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4.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자랑거리, 간식 예찬 by 이현욱

2025. 10. 8. 14:25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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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4.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자랑거리, 간식 예찬 

 

 

간식을 고를 때, 혹시 괜히 진지해지는 분 계신가요?

 

저는 요즘 내 간식이 몇 번째로 탕비실에서 사라지는지 체크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 작고 무해한 간식이 회사 생활 속 작은 감정의 파도를 만든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간식 선택이 회사 생활에서 작은 심리 게임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전 회사에서는 간식 주문을 담당해 주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간식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것은 주로 커피와의 조화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루에 몇 잔이나 되는 커피를 마시거든요. 그러니, 탕비실에 놓인 여러 간식 중, 그저 커피와 어울릴만한 것을 골라 가져갈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동료의 간식 목록은 그의간식 큐레이션이었습니다.

 

 

 

저는 대체로 그들의 큐레이션을 따라갔습니다. 가끔은 특정 간식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추천받은 간식을 받아먹는 입장이었죠. 그러다 보니 제 취향이 어땠는지, 뭘 좋아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수동적인 소비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동적이었기 때문인지, 그땐 간식에 어떤 감정을 실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회사의 문화는 조금 다릅니다. 이곳은 간식을 각자 필요할 때 주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효율을 위해 팀 단위로 한 번에 묶어서 주문을 하지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간식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묘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제는 간식을 통해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고른 간식이 순식간에 탕비실에서 사라졌습니다. 커피와 어울려 평소 좋아하던 티라미수 맛 아몬드를 시켰을 뿐인데(이전 회사에서 동료의 큐레이션을 통해 알게 된 간식입니다.), 반응이 뜨거웠지요. “이거 어디서 시켰어요? 정말 끝없이 들어가네요.” 조용히 사라져 가는 아몬드 봉지를 바라보며,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속으로선택 잘했네하고 혼자 어깨를 으쓱하게 되더군요.

 

반대로 실패의 기억도 있습니다. 그날도 나름 신중히 골랐는데,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품목은 제가 좋아하는 와사비 콩이었습니다. 와사비 콩은 저 말고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도록 탕비실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콩이 가득 든 봉지를 보니, 와사비 콩을 먹지도 않았는데 코끝이 찡해지지 뭐예요.

 

 

 

한편, 다른 사람이 주문한 간식을 관찰하면서, 그의 취향을 공감해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평소엔 커피와 어울리는 간식을 즐기지만, 가끔 허기가 질 때는 가장 먼저 감자 과자류의 간식을 찾습니다. 그렇게 허기가 진 어느 날, 간식이 들어있는 캐비닛을 열었는데요. 일본어가 적힌 처음 본 감자 과자 한 봉지가 남아있었습니다. 원래는 공복만 조금 달랠 예정이었는데 웬걸, 조용한 사무실에 울리는 바사삭 소리와 손에 묻은 양념이 키보드에 범벅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한 봉지를 다 비우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또 그 감자 과자가 있나 싶어 탕비실을 관찰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자 과자의 종류가 매번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과자의 종류는 브랜드나 국적의 한계도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때 맛있게 먹었던 과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팀원들을 수소문하였습니다. 매번 다양한 종류의 감자 과자를 주문하는 동료는 저희 팀에 가장 최근에 합류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감자칩을 유난히 좋아하여 매번 다양한 종류의 감자칩을 주문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맛있었냐며 기쁘게 과자의 이름을 알려주었지요. 덕분에 각국의 다양한 감자 과자를 맛보고 있습니다. 그가 픽한 과자는 한번 열면 도저히 멈출 수 없지요.

 

이렇게 간식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이거 어디서 샀어요?” 하고 물어올 때, “? 이 간식이 통했나?” 싶더라고요. 누군가는 남은 봉지를 슬쩍 챙기고, 또 누군가는 탕비실 옆을 지나며 한 마디 던집니다.

 

“그 아몬드, 또 시켜 주실 수 있어요?”

 

그럴 때면 어깨가 으쓱해지고, 소리 없는 칭찬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뭔가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의 성과나 연봉, 재테크 성과나 자녀 교육 같은 자랑거리를 내세우는 것은 참 민망한 일입니다. 그런데, 간식은 다릅니다. ‘내가 고른 과자가 제일 먼저 없어졌다는 사실은 그 어떤 부담도, 허세도, 눈치도 필요 없는 자랑거리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작은 자랑거리는 저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감자칩을 좋아하던 그 동료에게, “당신의 감자칩 때문에 살이 쪄버렸다.”라는 불평을 했을 때, 퍽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거든요.

 

요즘엔 이렇게 간식을 통해 누군가의 취향을 들여다보고, 서로의 결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즐겁습니다. 잘 팔리는 간식 하나에는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슬쩍 건넨 관심, 그리고 그걸 받아주는 소박한 인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장바구니 앞에서 몇 초쯤 망설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허니버터 아몬드를 넣습니다.

 

"이거 너무 잘 들어가서 살찔까 걱정이에요."

 

그 말 한마디 들으려고요.

 

 

Ep 15.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