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5. 보고서를 쓰다 문득 떠오른 말에 관하여 by 이현욱

2025. 10. 20. 00:54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5. 보고서를 쓰다 문득 떠오른 말에 관하여

 

 

 

조금 부끄럽고도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저는 아직도, 가끔은, 모친과 말다툼을 합니다. 모친께서는 내가 말대꾸를 하면 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변호사라 그런가, 입만 살아가지고...." 엄마의 말은 늘 옳지요.

 

말이 곧 무기인 직업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변호사일 것입니다. 법률 자문서, 소송 서면, 사내에서 작성하는 보고서까지, 변호사의 말은 문서로 쓰입니다. 그 문서는 논리적 구조와 설득력을 담은 완성된 말이어야 하지요. 변호사는 결국, 그가 남긴 말로 평가받습니다. 사내 변호사도 예외는 아니지요.

 

사진 : 프리픽스

 

 

▶ 문서가 달라도 본질은 같다

 

변호사가 작성하는 문서는 종류가 참 다양합니다. 재판부에 제출하는 소송 서면, 고객에게 전달하는 외부 자문서, 회사 내부에서 경영진을 위한 보고서나 의견서까지겉보기엔 전혀 다른 양식을 띠고 있지만, 그 뼈대는 모두 자신이 판단한 논리적 의견 제시라는 본질을 공유합니다.

 

소송 서면은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 사실관계와 법리를 치밀하게 엮습니다. 외부 자문서는 의뢰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법적 리스크를 설명하며, 때로는 여러 선택지 중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를 조언합니다. 이 문서들 모두, 궁극적으로는 독자의 결정을 유도하기 위한 변호사의 말입니다.

 

회사 내부에서 작성하는 의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이 다르고, 실행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구성은 달라질 수 있지만, 말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논리와 판단, 설득이 문장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변호사는 어떤 형식을 취하든 결국말하는 사람입니다.

 

숫자는 비즈니스의 언어

 

사내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말하는 방식은 '숫자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와 같은 결론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숫자로 요약될 때 훨씬 빠르고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외부 자문이나 소송 서면에서는 문장의 구조와 논리의 탄탄함이 우선이라면, 내부에서는 수치로 환산된 결론이 더 빠르게 신뢰를 얻습니다.

 

어떤 규제 리스크를 설명할 때 단순히 법적 쟁점을 나열하기보다는, 그 리스크가 예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숫자로 보여줄 때 비로소 말이 힘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법원의 판단 논리만을 요약하기보다는, 유사한 사실관계의 판결 결과를 정리하고 그 평균적인 손해액이나 인정 비율을 근거로 분쟁에서 예상되는 수치적 영향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숫자가 뒷받침된 말은, 조직 내에서 훨씬 빠르고 명확한 판단을 이끌어냅니다. 숫자는 말보다 먼저 읽히는 정보이며, 비즈니스의 언어입니다.

 

사진 : 프리픽스

 

 

결론부터 말하는 힘

 

사내 의견서를 작성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아무리 정교한 논리를 펼쳐도, 'GO인지 STOP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변호사는 본래 재판부를 설득하는 언어에 익숙합니다. 차근차근 논리를 전개해 독자가 스스로 결론에 이르도록 돕는 구조이지요. , 재판부와 변호사는 모두 법조인이기 때문에, 법조계 사이에 이미 정리된 약속도 존재하지요. , 변호사는 재판부라는 독자를 위한 언어에 익숙한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독자가 다릅니다. 판단은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고, 결론은 질문보다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궁금해하기 전에 답을 보여주는 글’, 그것이 사내에서 필요한 의견서입니다.

 

사진 : 프리픽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숫자결론이라는 사내 변호사의 말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먼저 그 말을 담을 그릇 또한 독자에게 익숙한 것으로 맞추어야 합니다.

 

가령,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각 회사마다 익숙한 도구와 양식이 서로 다릅니다. 어떤 조직은 HWP를 고수하고, 또 어떤 조직은 MS워드 문서나 PPT로 구성된 슬라이드 한 장을 더 선호합니다. 심지어, 특정한 보고 형식 없이, 메신저상의 대화만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조직도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속한 조직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 방식을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가령, 저는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그 회사의 최근 1~2년 치 품의서와 내부 보고서를 차분히 읽어봅니다. 형식과 어휘, 표현의 강약을 익히며 톤 앤 매너를 체화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속한 팀이 누구와 자주 소통하는지, 즉 누가 핵심 독자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내 변호사는 법리를 번역해 조직의 언어로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낯선 말을 익숙하게 바꾸는 이 훈련은, 결국 설득의 시작점이 됩니다.

 

마무리하며

 

사내 변호사는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경영 판단을 위한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사내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변호사 업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변호사는 말로 구조를 짜고, 문장으로 방향을 제시하며, 문서로 판단의 조건을 마련합니다. 어떤 형식으로 하든, 어떤 독자를 상대로 하든, 변호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그때그때 형식과 표현이 달라질 뿐입니다. 심지어, 엄마와 싸울 때도요.

 

 

Ep 16.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