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8 : 나는 안 늙을 줄 알았다 by 주현영

2025. 12. 31. 11:14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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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8 : 나는 안 늙을 줄 알았다

 

 

 

추워지는 날씨 탓인지 요즘 부쩍 쓸쓸한 기분이 든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50살을 앞두고 있다.

 

예전엔 50살이 되면 내 인생이 안정되어 있을 줄 알았다. 내 커리어도 안정되고 노년에 대한 대비가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되어 있겠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선배들을 보면서 ‘나이도 많은데 왜 집에 안 가시고 계속 일하시지, 일이 그렇게 좋은가’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50살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내 현실은 내가 과거에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50살도 아직 집에 가서 놀 나이가 아니더라. 나는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아직 일할 의지와 힘도 남아 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예전에 내가 바라보던 선배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현재 땅이 뒤흔들릴 것 같은 혼란과 방황의 지점에 서 있다.

 

우선, 조직 내에서 나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한창 일하던 3~40대에는 조직 내에서 나의 역할이 충분히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이 주어졌고, “주 변호사, 이 업무 맡아줄 수 있어요? 이 사건 같이 할래요?” 이런 것이 자연스러웠다. 때로는 내가 이 조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교만하게도 “언제까지 이렇게 일을 해야 하지? 선배들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지겹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에게 선배들이 업무를 부탁하는 연락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내 스스로 업무를 찾아다녀야 한다. 대신 내 주변의 후배 변호사들이 여전히 바쁜 것을 보니, “아, 그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체되고 있었구나. 내가 진짜 독립적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머리로는 조직에서 젊은 사람에게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도 연차가 높아질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아마 이 칼럼의 제목을 ‘살아남기’로 정한 것도 살아남지 못하는 순간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연차가 높은 꼰대가 되다니, 아~~~ 정말 나는 안 늙을 줄 알았다.

 

조직 내에서 연차가 높아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조직 내 연차가 높아진 사람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들은 과연 조직에서 쓸모를 어떻게 입증해야 할까? 요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상급지가 아닌) 서울에 소형 아파트를 소유한 대형 로펌 조직 내 주 부장이었을까?

 

현실은 조직 내 대표, 운영위원, 그룹장, 팀장 같은 극소수의 핵심 라인이 아니라면, 조직에서 그냥 사라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곧 나는 조직에서 그런 핵심 라인이 되지 못한 채 50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요즘 나는 50대 더 나아가 60대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가장 행복할지 잘 모르겠다. 이 조직에 계속 있어야 할지?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업무를 해야 할지? 아니면 변호사가 아닌 다른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할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을 맞이하는 내 마음이 단순하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틸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노력이 부족하여 핵심 라인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하는 자책감, 나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억울함,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초조함, 앞으로 어떻게 독자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이 나를 휘몰아쳐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렇다면, 조직에서 핵심 라인이 되지 못한 나! 재테크를 잘하지 못하여 상급지에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 나! 그런 나는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일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금껏 살아 보니 세상에 정답은 없더라.

 

이 글을 읽게 될 후배 변호사님들, 변호사가 아닌 나보다 어린 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싶다.

 

1) 막상 50살이 되니까, 아직 더 일하고 싶고, 조직에도 더 있고 싶더라. 그리고 50살이 되어도 마음은 여전히 젊을 때랑 다르지 않고 여전히 사는 게 무섭더라. 그러니 이런 내 마음 조금은 이해해 주고 나이 많고 꼰대라고 마냥 피하지는 말아주라.

 

2) 그리고 조직 생활 우습게 생각하지 말자. 크든 작든 조직에 속하지 않고 혼자 업무를 했다면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조직 생활에서 배울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이 결국 오늘날의 나를 발전시킨 거더라. 나이 50살이 되어도 막상 조직을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더라.

 

3) 조직 내 정치라는 거 우습게 생각하지 말자. 나도 내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조직 생활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더라. 연차가 높아짐에도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결국 핵심 라인의 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 하는 거더라. 일찌감치 조직을 벗어날 생각이 아니라면 조직 내 핵심 라인이 되려는 노력도 같이 해 보자.

 

4) 젊었을 때 나에게 일이 많이 주어지는 거 그저 내가 잘난 것 때문만은 아니니 우쭐해하지 말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도 말자. 조직에서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게 현실이더라. 조직 내에서 핵심 라인에 진입할 건지, 조직 내에서 자신만의 길을 추구할 것인지, 조직을 발판 삼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자신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유연하게 잘 정해보자. 제일 나쁜 게 나처럼 어정쩡하게 산 거더라. 이렇게 살면, 죽도 밥도 아닐 수 있으니, 우리 현명하게 생각하자.

 

그리고 조직에서 자의든 타의든 나와서 자기만의 영역을 쌓아가며 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정말 존경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 또한 여러 가지 고민 앞에 서 있고, 챗지피티와 내 앞날을 논의하는 고독한 사람이지만, 당신들이 그러했듯이 용기 내어 한 발 내디뎌보겠다. 한편,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내가 숨을 쉬면서 살고 있고 성숙해져 가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젊었을 때 어디서나 쓰임이 있던 시절은 지나서 이제는 약간 세상의 뒤안길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쓸쓸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인생의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노래 중에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노래처럼 나는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보다 여유로우면서도 진정한 나로서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여전히 서울, 대한민국, 아시아, 지구, 태양계, 은하계에서 조그마하더라도 내 독자적인 영역에서 전문성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 서서 나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세상이 나를 반기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 세상을 반기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러니 오늘이 인생 전체에서 가장 젊은 날이고, 가장 행복한 날이다. 

 

 

Ep 9.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