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4. 09:25ㆍ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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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8. 운동화 대신 식판을 들기까지
연초에 분명히 계획을 세웠습니다. 점심시간 운동도 시작하고, 조금 더 규칙적인 삶을 살아 보겠다는 다짐이었지요. 당연하게도 그 계획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정이 치고 들어오고, 작은 변수들이 쌓이다 보니 루틴은 금세 어긋났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었지만, 몸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점심 운동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점심시간에 운동을 다녀오는 것이 하루의 중심을 잡아 주었는데, 두세 달 전부터 그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운동을 쉬기 시작하니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습니다. 바지가 조금씩 불편해지고, 체력이 부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계속 찾아왔지만, 운동화는 좀처럼 책상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운동을 미루는 날이 길어질수록 작은 죄책감이 스며들었고, 그 죄책감은 몸을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은 그럴듯했지만, 사실상 변명에 가까웠습니다. 의지를 되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늘어난 뱃살을 움켜쥐며 고민을 하던 차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전에 지인에게 들었던 공부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수험 기간동안, 시험공부를 하면서 하루 분량을 정하거나 몇 시간을 공부하겠다는 목표를 거의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독서실에 가장 먼저 들어가 불을 켜고, 가장 마지막에 나와 불을 끄는 학생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즉, 공부량이 아니라 환경을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친구가 나갈 때까지, 공부를 하는 대신 미드를 보며 버틴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주객전도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어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고, 마치 제 마음속에도 ‘탁’하고 불을 켜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의지를 탓하며 어둠 속에 서 있을 게 아니라, 일단 환하게 불부터 켜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지요.
저도 지인의 성공 방식에 착안하여, 저만의 독서실 스위치를 찾아보던 중, 마치 스위치처럼 제 시선을 끌어당기는 단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침밥.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말입니다. 저는 보통 아침 식사를 잘 하지는 않는데, 회사에 아침밥을 먹으러 조금 더 일찍 오고, 그리고 아침을 많이 먹고 점심시간을 확보해 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간단한 조식 뷔페를 제공해 주는데요. 저는 아침 식사 시간에는 항상 샐러드에 과카몰리 한 스푼, 그릭요거트에 견과류를 톡톡 얹는 루틴으로 먹습니다. 가끔은 따뜻한 계란 요리를 곁들이며 배를 조금 더 든든히 채우기도 합니다. 이렇게 식판에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는 그 단순한 행위는 하루를 ‘시작했다’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업무도 더 일찍 시작하게 되었고, 오전 시간의 밀도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지러웠던 일상의 톱니바퀴도 하나둘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점심도 가벼워졌습니다. 예전처럼 식사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드니, 점심시간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생기니 운동화를 챙기게 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운동을 해야 하는데.’라며 걱정하고, 의지를 돋우려 할 때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그저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함으로써 점심시간을 비우고, 비어 있는 시간에 그동안 해오던 점심 운동을 자연스레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게 된 상황’으로 바뀌니, 몸이 훨씬 가볍게 움직였습니다. 이상하리만큼, 결심하지 않을 때 오히려 일이 더 쉽게 되더라고요.
이런 것이 ‘넛지(nudge)’[1]가 아닐까요? 아침밥은 저에게 아주 작은 넛지였습니다. 억지로 움직이라고 등을 떠미는 힘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조용한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운동이라는 무거운 목표 대신, 훨씬 가벼운 ‘아침밥 먹기’라는 행동을 선택했을 뿐인데,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도미노처럼 톡 하고 쓰러지면서, 제 하루의 다른 조각들도 차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다시 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었습니다.
의지는 늘 늦게 오지만, 환경은 먼저 손을 내밀어 주더군요. 아마 지인의 독서실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도, 저도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목표가 실현될 수밖에 없는 자리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았을 뿐입니다. 그는 독서실의 불을 켜고 끄는 일을 반복했고, 저는 매일 조금 일찍 나가 아침밥을 먹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행동은 다르지만 원리는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 흐트러졌을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목표를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 다시금 목표를 향해 자연스럽게 걸어가게 만드는 작은 방향 전환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아침밥 한 끼가 하루를 앞으로 당기고, 그렇게 당겨진 하루가 다시 저를 운동으로 이끌었습니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작은 환경 변화가 삶의 톱니바퀴를 다시 맞물리게 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침밥을 먹으러 회사에 갑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요거트를 떠먹는 동안 저는 리듬을 되찾고 있습니다. 나를 제자리로 다시 데려오는 힘은 언제나 이렇게 작은 곳에 숨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조금 일찍 집을 나서 봅니다.
Ep 19.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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