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 일하기 Ep 7. 개업변호사가 상간 소송을 만났을 때by 고봉주

2026. 2. 11. 08:04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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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 살기

- Ep 7. 개업변호사가 상간 소송을 만났을 때

 

 

<플리백(FLEABAG)>은 영국 BBC에서 2016년, 2019년에 각 방영된 드라마로, 시즌 1, 2가 있다. <플리백>은 시즌 1부터 평단의 대호평을 받았고 시즌 2는 더욱 큰 찬사를 받았다. <플리백>은 드라마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의 별명인데 ‘싸구려 여관’, ‘너저분한 몰골’을 뜻하는 부정적 어감을 가진 단어로, 주인공의 이름(별명)을 통해 캐릭터가 어느 정도 가늠된다. 플리백은 런던에서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 도시 여성인데 어떤 연유로 인해 내면에 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면서 그게 자기혐오로까지 발전한 인물이다. 플리백의 자기혐오는 주로 연애를 통해 드러난다. 소위 말하는 ‘쓰레기’를 거르지 못하면서 자기혐오가 깊어지는 악순환과 가족과의 갈등은 선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서 해결의 실타래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상황이다.

 

BBC 드라마 플리백 포스터

 

 

시즌 1이 플리백의 과거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모습이라면, 시즌 2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현재의 상태와 플리백의 러브 스토리가 주요 내용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시즌 2가 시즌 1보다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인기가 많은 것을 보면 역시 사람들은 러브 스토리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드라마의 성격상 러브 스토리 역시 매우 현실적이고 플리백은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을 간다. 시즌 2에 처음 등장하는 가톨릭 신부가 그 대상인데, 이름은 나오지 않고 ‘Hot Priest’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정말 ‘Hot’한 캐릭터이고 현실까지 그 열풍이 대단했음은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신부’라는 직업에서 예상할 수 있듯 결국 그는 플리백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신부의 삶을 선택하는데, 후반부에 두 사람의 감정 교류가 만들어낸 엄청난 장면들이 있고 마지막 화에서 나누는 대화와 장면은 대단히 긴 여운을 남긴다. 무릎을 꿇으라는 ‘Kneel’ 대사도 이 드라마가 남긴 명장면이지만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싶은 대사는 플리백의 사랑 고백에 신부가 답하는 장면이다.

 

“It’ll pass.”

 

사랑을 고백한 후 상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기에 이것보다 가슴 아픈 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대사가 얼마나 크게 흥행했는지는, 신부를 연기한 앤드루 스콧(Andrew Scott)의 인터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언젠가 본인이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맞은편의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It won’t pass”라고 소리를 지르더라는 배우가 겪은 일화도 있고, <플리백> 시즌에서 이 대사만 집중 탐구한 영상이 있을 정도로 이 대사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어떤 감정이든 언젠가는 지나가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알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 장면을 보며 나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현실로 돌아와서 조금 자극적일 수 있는 이 글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상간 소송은 인간사에 필히 발생하는 소위 ‘불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현행법상 유일한 법적조치이다. 정확한 사건명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고 ‘위자료 청구 소송’으로도 많이 쓰는데, 손해 배상 내용의 한 종류가 위자료이기 때문이다. 상간 소송은 이혼 소송처럼 변호사 광고가 정말 많은 분야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조언을 구하려면 남한테 숨기고 싶은 배우자의 외도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고 변호사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광고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성행하는 광고 시장의 흐름과는 별개로 상간 소송을 꺼리는 변호사도 많다. 감정 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상간 소송은 이혼 소송처럼 이불 속에서 일어나는 사실 관계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타인 간의 매우 은밀한 사생활을 다 들춰 보고 분석해야 하는, 그야말로 감정이 노동을 하는 소송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의뢰인 및 소송과 다소 거리를 두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데, 의도적 거리 두기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칫 의뢰인의 상황과 감정에 너무 이입한 나머지, 마치 변호사 본인이 당사자인 것처럼 상대방 대리인한테 화를 내거나 심지어 소송 전략 판단을 그르쳐 조정에서 무리한 금액을 고수하거나 변론을 펼치고 그 결과 불리한 재판 결과를 받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 안되고 한 번 걸러서 수용하고 때로는 평가도 해야 한다. 어차피 당사자가 아무리 억하심정을 호소해도 재판에 가면 제삼자가 객관적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 역시 상간 소송을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상간 소송을 잘(?) 하는 편이다. 원·피고 어느 쪽을 대리하든, 즉 배우자의 외도를 당한 입장(원고)이든 외도를 직접 하였거나 상간자로서 상간 소송을 당한(피고)입장이든 그 상황에 맞춰 전략을 세우고 증거도 최대한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위자료를 많이 받아 주거나 혹은 청구를 당한 금액에서 많이 감액되게 해주는데, 비결은 공감력과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의뢰인의 감정에 공감해 주고(내 성격 특징 중 하나가 공감력인데 단점도 크다.), 내가 공감한 부분을 재판부도 동의하게끔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플리백>을 보면서 내가 맡은 사건 중에 ‘Hot priest’의 명대사를 말해주고 싶은 경우가 생각났다.

 

평소 부부관계에 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상황을 전제하는 경우 배우자의 외도를 겪은 사람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이때 외도를 당한 배우자가 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이혼을 제기하면서 외도 배우자와 상간자를 상대로 상간 소송을 제기하거나, 이혼은 안 하면서 상간자만 상대로 상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에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가 오히려 이혼을 원하는 상황이다. 외도를 당한 배우자는 이혼을 원하지 않기에 외도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거절하는데, 이 상황을 풀기 위해선 외도 배우자의 태도가 결정적일 정도로 중요하다.

 

 

만약 외도 배우자가 외도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서 가정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외도를 한 것은 미안하지만 이혼을 해달라고 하면, 외도를 당한 배우자의 분노는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즉, 이 상황의 숨은 의미는 외도를 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배우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제발 이혼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내 경험상, 외도를 당한 배우자는 절대로 외도 배우자의 감정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랑이 소멸한 외도 배우자의 감정을 부인하고, 나중에는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면서 두 사람(외도 배우자와 상간자)에 대한 증오심이 본인을 파괴할 정도로 치솟는다. 의뢰인의 감정 변화는 변호사에게 바로 표출되고 전달되기 때문에 변호사는 그 감정적 폭발의 위험성과 자기 파괴성을 감지한다.

 

나는 상간 소송을 진행하면서, 진심으로, 외도를 당한 의뢰인인 그(또는 그녀)에게 <플리백>의 명대사를 해주고 싶은 적이 꽤 있었다.

 

“It’ll pass.”

 

진심으로 의뢰인의 입장에서 이제는 본인을 위해 “Move on” 하길 바랬다. 의뢰인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외도 당사자 두 명에 대한 증오심까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이 본인의 영혼마저 잠식하고 있으니, 의뢰인에게 이 고통은 지나갈 것이고 이제는 본인 인생을 사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말해본 적은 없다. 그 당시에는 의뢰인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간 소송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형사고소나 다른 민사 소송으로 파생되기도 하고, 재판에서 진 상대방들이 위자료를 지급하고도 그 상황에 변화가 없으면 추가 상간 소송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의뢰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그만큼 길어진다. 만약 상간 소송과 관련 사건을 진행 중인 당사자가 이 글을 통해 <플리백> 시즌 2의 마지막 대사를 보면서, ‘이제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잠시라도 든다면, <플리백>을 추천하는 입장에서 보람을 느낄 것 같다.

 

 

Ep 8.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