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8. 09:00ㆍ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 4. 회색 지대에서, 결국 문제 해결의 시작은 학문으로부터
어느덧 모범 답안을 그대로 옮겨 적는 학생의 자리에서는 벗어났음을 느끼고, 초년차 때 겪은 시행착오들(지금은 웃고 넘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참 고통스러웠던 흑역사다.)은 나만이 가진 노하우가 되고 있다. 아직 더 배울 것이 많기에 변호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나만의 비책에 쌓아둔 실무 지식을 하나씩 꺼내 보면서 ‘어제보다 나은’ 자문 변호사가 되기 위한 다짐을 한다.
그러면서 질문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어, 최근에는 ‘자문자답(일종의 자기 검증이다)’을 활용하고 있다. 그간의 실무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음 질문들을 나 스스로에게 먼저 해본다. 사실 관계와 정책 프로세스를 명확히 이해했는가? 법적 쟁점과 이에 대한 법령, 사례를 폭넓게 파악했는가? 추가로 확인해야 할 사실 관계/프로세스/정당성의 근거가 무엇인가? 이 경우 예상되는 리스크는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몇 가지인가? 실현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답을 찾을 수 없는 때에는 다시금 ‘모범 답안’을 펼친다. 새로운 사례보다 본질적인 법 원리와 법이 보호하는 가치(취지)들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이 오면 다시 강의실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비즈니스 검토에 종종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 검증의 과정에서 법률 실무와 법학 학문 간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크다. 결국, 생각과 질문은 다시 학문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실무에서 배운 유연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상(법 원칙)과 현실(우리가 사는 세상)과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회색 지대들에 색깔을 입혀 가는 과정이라 표현하고 싶다.
지난 학기에는 입법 과정과 법 해석론에 대한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다. 법률의 문언 해석에 충실하더라도 그 한계가 있는 지점에서는 입법 취지와 목적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고, 문언과 입법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을 때 비로소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한 사례로,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소상공인의 생계와 경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 (약칭: 서점업)’을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였다(2024년 말 서점업 재지정). 그 배경에는 서점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이 약 90%에 달하고, 전반적으로 해당 사업체의 평균 매출, 영업이익 등이 영세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형서점은 도서 판매와 운영 등에 있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등 제한이 생겼다.
학교 앞 ‘동네 서점’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최근에는 대부분 온라인 몰에서 구매하거나 유명한 중고 서점에서 보다 할인된 가격에 책을 구매하고 있기 때문에, 서점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특별법과 고시가 필요한 규제라는 점에는 어느정도 공감한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과연 ‘중고 서점’과 ‘온라인 서점’은 위 규제의 대상에 포함되는지, 위 규제만으로 과연 ‘동네 서점’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법 문언만으로 보면, 중고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해당 규제의 직접적인 대상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보호하려는 법령의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유관 사업을 하면서 이러한 부분을 결코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 사내변호사는 회사의 비즈니스가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포함되는 경우 어떤 부분을 손보아야 하는지 검토하게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법이 개정되거나, 유사 업종이 신규 지정될 경우 직접적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내변호사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보다 실무적인 판단과 고민을 해야 하는 때가 많다. 위에서 본 사례처럼 법조문만으로는 규율되지 않는 사업적 이슈를 마주하였을 때, 판례와 행정 기관의 해석례에도 의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도 변호사의 시선이 아니라 비즈니스 실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올 때도 있다. 이는 회사에서 마주하는 이슈들이 단순히 법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라기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욱 거시적으로는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지 등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강의실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법 해석의 원칙이 사건 해결의 출발점이다. 그 이후에 시장 상황 속에서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공무원, 플랫폼 사업자, 사내변호사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학문과 실무를 겸하면서 느낀 법률가의 역할은 이론과 현실 사이를 이어주며, 무수한 회색 지대에 다양한 색을 채워가는 것이다.
Ep 5.에서 계속........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 3. 비즈니스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 들과 사내변호사의 전문성 by 이시원 (9) | 2025.08.13 |
|---|---|
|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 2. 각주구검 이야기 : 법, 물 흘러가듯이 사람의 품으로 by 이시원 (12) | 2025.06.11 |
|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1. (프롤로그) 다시, 학교를 찾은 이유 by 이시원 (6) | 2025.04.08 |
| 작가소개 - 변호사 이시원 (2)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