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20. 생각의 섞음 by 이현욱

2026. 4. 8. 06:50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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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20. 생각의 섞음

 

 

법률가는 결국 의견을 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안을 정리하고, 가능성을 나열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 말해야 합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라는 말은 종종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종착점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그 말 위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법률가에게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사내변호사라고 해서 이 점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조직 안에 있을수록, 판단을 유보하지 못하는 순간들은 더 자주 찾아옵니다.

 

 

 

다만, 그 의견이 언제나 편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법적으로 맞는 말과, 현실에서 작동할 말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는 분명한데, 실제로 그 말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여러 전제가 맞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법률가는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식하게 됩니다.

 

사내변호사가 하는 일은, 수많은 고려 요소들 중에서법적 관점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의견이 채택될지 여부는 다른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결정이 어디까지 감수해야 하는 선택인지, 어떤 기준 위에 놓여 있는지 정도는 명확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 지점까지가, 제가 맡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 판단이 항상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거나, 법령이 비교적 명확한 사안이라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오히려 단순한 편입니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는 비교적 분명하고, 그에 따라 의견을 제시하는 데 큰 망설임이 생기지 않습니다.

 

문제는 비즈니스의 영역에 놓인 사안들입니다. 아직 판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거나, 법령의 문언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들, 그리고 실무자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남아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 사안에서는 법적 관점이 곧바로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어디까지를 위험으로 볼 것인지,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해집니다. 사내변호사의 고민은, 대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세 가지 긴장의 끈

 

대부분의 사안에서 사내변호사의 의견은 늘 하나의 방향으로 곧바로 정리되기 어렵습니다. ‘의견을 내야 한다는 요구, ‘그 의견이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기대’, 그리고 법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원칙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 셋은 각각 따로 보면 당연한 요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판단 안에서 쉽게 정렬되지 않습니다. 사내변호사가 마주하는 많은 고민은, 바로 이 서로 다른 요구들이 한 지점에 겹칠 때 발생합니다.

 

 

 

첫 번째 긴장은, 사내변호사가 결국에는 반드시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법적 가능성을 정리하고, 위험을 설명하는 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조직은 판단을 미루지 않고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법적 관점도 역시 정리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직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문장을 내놓아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됩니다.

 

두 번째 긴장은, 그 의견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생깁니다. 사내에서의 법적 의견은 문서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의견 위에서 일정이 조정되고, 거래 구조가 바뀌며, 이미 움직이고 있는 일들이 멈추거나 방향을 틀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늘 지금의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결론인지, 실행 과정에서 어떤 부담을 남길 것인지까지 함께 고려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지점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지금 이 상황에서 가능한가요?”

 

세 번째 긴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기준과 논리적 타당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원칙에서 비롯됩니다.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적 기준을 느슨하게 하거나,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판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사실 그런 의견은 굳이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내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았을 때,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의견은, 책임 있는 말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 세 가지 긴장은,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의견을 내야 한다는 요구,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기대, 법적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서로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이 긴장은조율이나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판단이 이루어지는 동안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생각의 섞음

 

이 세 가지 긴장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으면 판단은 의외로 쉽게 한쪽으로 기웁니다. 당연하게도, ‘법적 타당성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습성이 사안의 다른 면을 충분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결론으로 향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보통 변호사가 현실을 모른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이런 습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이 훈련받은 대로만 흐르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일부러 한 번 더 멈추고, 다른 관점을 끼워 넣습니다. 법적 기준만으로 충분한지, 이 사안이 어떤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를 달리 살펴봅니다. 긴장을 즉시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긴장을 더해 두는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을생각의 섞음이라 부릅니다.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생각을 한쪽에 고정해 두지 않는 태도, 법률가의 언어만으로 사안을 정리하지 않고 다른 기준에서 나온 생각을 곁에 두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법무팀 밖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수집합니다. 심지어 가능하면 그런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참고로 저는 술을 한 잔도 못 마시지만, 가능하면 술자리에도 참석하곤 합니다. 공식적인 회의 자리가 아니라, 식사 자리나 잠깐의 차 한잔 같은 비교적 느슨한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서로의 생각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도 섞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로 듣게 되는 것은, 현장 실무자들이 법적 판단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적 기준이 중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왜 일정이 밀릴 수밖에 없었는지, 현장에서 어떤 판단이 먼저 요구되었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어떤 부담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변호사님은 현실을 너무 모릅니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의견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아닙니다. 충분히 고민한 끝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지점은 그대로 의견을 냅니다. 다만, 생각을 섞고 나면, 그 판단이 현장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받아들여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오해가 생길 수 있는지는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설명을 덧붙이고, 왜 이 사안이 법의 취지나 해석상 문제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게 됩니다. 결론은 같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고민의 과정과 설명 방식은 달라지는 셈입니다.

 

이렇게 섞인 생각들은, 판단 과정 내내 제 태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붙들어 둡니다. 그 덕분에 저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긴장을 잃지 않은 채 의견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협이 아닌, 긴장의 유지

 

실무와 법적 관점 사이의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는 결론이 조금 어색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실과 법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일보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까지 그 긴장을 유지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섞는다고 해서, 제 결론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문제라고 판단한 사안은 여전히 문제로 남고, 그에 대한 의견 역시 그대로 제시됩니다. 다만 그 결론이 어떤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 무엇을 감수한 판단인지, 그리고 왜 이 지점은 넘길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그 설명의 밀도가 사내변호사의 역할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내변호사의 의견은 언제나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에 밀려 기준을 낮출 수도 없고, 기준에만 기대어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판단의 한가운데에 긴장 상태를 남겨 둡니다. 생각을 섞고, 언어를 섞고, 그 상태를 견딘 끝에 내놓는 의견이라면, 적어도 탁상공론이나 무책임한 말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내변호사의 일은, 정답을 가장 먼저 말하는 일이 아니라, 쉽게 느슨해지지 않는 판단의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Ep 21.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