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1. 09:45ㆍ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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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2. 각주구검 이야기: 법, 물 흘러가듯이 사람의 품으로
’법(法)’이라는 글자는 물 수(水) 변에 갈 거(去) 자를 쓴다. 물처럼 흘러가라, 즉 순리대로 가라는 뜻이다. 학창 시절에 법을 주제로 썼던 글을 보면, 법이 ‘물이 흐르듯이 인간의 품으로’ 갈 것을 희망하거나, ‘법을 다시 사람의 품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예비 법조인의 포부가 담겨 있다.
법률 지원 봉사활동을 하면서 결혼 이주 여성, 청소년, 시각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께 법의 해석과 적용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 예컨대, 결혼 이주 여성의 외국인 비자 인정 및 연장은 많은 경우에 형식적 서류와 조건의 구비에 따라 일차적 판단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분들이 우리나라에서 나날이 쌓아온 삶과 이야기는 서류 더미 속에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아이를 키우고, 교육을 받거나 일을 하고,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법의 해석이 절실했다.
인공지능이 아직 법의 영역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것은 법의 해석과 적용에 ‘인간성’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법조인이 그러한 책무를 가지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변호사가 된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법 공부는 어렵다. 일단 외울 것이 너무 많다. 새벽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강의실과 열람실을 오가며 앞만 보고 달렸던 로스쿨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아득하다. 변호사 시험이 끝난 날, 책가방으로부터 해방된 어깨가 유독 가벼웠던지 동네를 방방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또 그때를 떠올리면, 툭 치면 탁 나올 정도로 법조문이며 판례 문구를 외웠지만, 방대한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제대로 마주해본 적이 있었는지 싶다.

지난 학기 규제행정법 수업에서 이런 내 지난 고민에 대한 답을 주시는 듯,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법과 규제는 ‘각주구검(刻舟求劍)’ 이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규제는 놓친 칼을 찾기 위해 배 위에 새긴 표식에 불과하며, 그 표식을 따라 칼을 찾으려고 해도 이미 흘러가 버린 강물 위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와 비교하면 법과 규제가 진화하는 속도는 더디고,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아무리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도 결코 그 변화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애초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아주 크고 역동적이어서, 일률적으로 규제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물 흘러가듯이, ‘순리대로 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작년 여름, ‘티메프’ 사태가 유통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온라인 상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가 거래 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못해서, 백화점, 대형 마트와 같은 대규모 유통업자, 신용 카드 회사 등이 피해를 봤고, 각종 영세업자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항공, 호텔 등 예약이 취소되자 휴가를 준비하던 일반 시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당시 유통 회사 법무팀에 근무하였기 때문에 급박했던 상황이 떠오른다. 클릭 한번이면 해외 항공, 숙박, 식당까지 휴가 일정이 뚝딱 나왔지만, 그 ‘온라인 중개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니. 그물망처럼 얽혀 복잡한 법이 오히려 특정 사업자를 규제할 수 없는 회색 지대를 만들어 낸 셈이다.

곧이어 이들을 ‘대규모 유통업자’로 포섭하여 기존 법으로 규제하는 방법, 완전히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방법 등 각종 대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미 시민들의 달콤한 휴가는 끝나버렸고, 영세업자들이 손으로 일군 사업은 문을 닫았다. 아무도 그들의 아쉬움과 슬픔을 달래주지 못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발전하는 이 사회에서, 법과 규제는 배 위에 새긴 표식과 같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낳고,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낳는다. 상처 난 자리에 반창고를 붙이면 당장의 아픔은 덜하겠지만 그 흔적은 남는다.
하지만 언젠가 상처에는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비록 급변하는 사회를 법이 따라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 국민이 ‘공감’하는 법의 해석과 판결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법조문과 기록 너머에 사람을 보듯, 법과 제도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발 맞추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 나 또한 법이 물처럼 흘러 사람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p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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