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p 2. 컴플라이언스는 재미있다. by 카일

2024. 7. 3. 11:05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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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2. 컴플라이언스는 재미있다.

 

 

제목부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컴플라이언스(준법지원)가 재미있다니. 어떤 영업을 해서 고객에게 자사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 법무팀처럼 소송에서 고객을 대변하여 눈에 보이는 분쟁을 해결한다거나 계약서 협상 및 작성을 통해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케팅, 회계 또는 인사팀처럼 회사를 위해 또는 직원들을 위해 눈에 보이는 용역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니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어렵다. 더더구나 사내에서 경찰을 자처해야 하는 업무 성격상 다른 부서들과 특별히 친하게 지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컴플라이언스가 재미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가 재미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 분야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필수적으로 얘기해야 할 듯한데, 안 그래도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법률책임자인 호세인 나우바가 한국에서 개최된 인공지능 관련된 세미나에서 매우 인상적인 말을 남긴 바 있다.

 

컴플라이언스는 재미있는 직업입니다. 자기의 일을 잘 하면 아무도 있는지 모르고, 잘못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게 되는 일입니다.”

 

이 말이야말로 컴플라이언스를 정말 잘 설명하는 말인 듯하다. 상기의 말을 전제로 컴플라이언스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면, 컴플라이언스는 내부 준법 제도를 구축, 적용, 관리, 운영하는 것이다. 조금 더 풀어 설명을 하면, 법적인 요구사항과 회사가 내재한 리스크에 따라 회사 내에 자율적으로 준법 제도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인데, 준법을 넘어 윤리 경영과 관련된 행동 강령의 실천을 위한 제도를 포함하기도 한다.

 

준법지원인 또는 감시인의 임무는 본인이 속한 회사의 리스크를 기반으로 준법 제도를 구축하고, 주기적인 교육을 통해 법적 요구사항이나 내규 위반을 예방하고 위반 사고 발생시에는 그 사고를 관리하고, 위반 행위를 적발하고, 구축된 제도를 주기적으로 검토하여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내부 준법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고 예방 및 관리가 잘 되어서 자율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면, 일반 직원들 입장에서는 준법 부서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준법 제도에 문제가 있어 사고가 발생하고 감독기관으로부터 감사가 시작되고 미디어에 보도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준법 부서의 존재를 알게 되기 때문에 호세인 나우바의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설명할수록 오히려 지루하게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니 컴플라이언스가 재미있는 분야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컴플라이언스에는 많은 창의력이 요구된다. 예컨대, 컴플라이언스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교육을 통한 예방이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컴플라이언스를 회사 내에 정착시키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먼저 문화를 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할 때는 따분한 윤리나 규제, 법적 요구사항에 대해 일반 직원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교육 내용을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어야만 한다. 실제 사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반으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하고, 퀴즈 세션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게 하기도 하고, 일반 사회 과학 책에서 나온 내용을 접목시켜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하기도 하고 현재의 추세나 사회의 변천사 등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전에 한 교육에서 조종석 이론(cockpit theory)을 인용한 적이 있다. 조종석 이론은 미국의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1990년대 만연했던 대한항공 추락 사고들의 원인으로 부기장이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의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계급 또는 선후배 문화를 꼽은 것을 말한다. 이를 인용하여 왜 그러한 문화가 비행기 추락과 같은 크나큰 참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부적절한 행위를 목격하였을 때 고발 또는 의사 표현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교육 과정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또 하나의 예로 또 다른 글로벌 회사에서는 준법지원인이 웹툰을 그리는 취미가 있어, 준법 관련된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공지할 때 직접 그린 웹툰으로 메세지를 만들어서 공지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교육에서뿐만 아니라 내부 통제를 통해 리스크를 완화시키면서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에도 창의력이 요구된다. 내부 통제란 영어로는 internal control이라고 부르는데 컴플라이언스에서 일컫는 내부 통제는 말 그대로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 내부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이버보안을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인터넷을 통째로 없애 버리는 것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러한 조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하게 해주면서도 효율적으로 사이버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위험 완화와 업무 효율성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데 있어서 분석력과 창의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어떻게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만드는가는 순전히 준법지원인의 역량과 성향에 달려 있다.

 

둘째, 컴플라이언스를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회사 전체를 상대로 부서별 교육을 진행하고 리스크가 있을 수 있는 부서들과 별도의 미팅을 하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자주 있다. 또한 다른 국가들을 일 년에 몇 번씩 방문하면서 그 나라의 직원들을 교육하고 그 국가의 리더들과 주기적인 미팅을 갖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현 직장에 입사하면서 미국에서 살 때는 가보지 못한 동남아권 국가들을 방문하여 교육을 실시할 기회가 주기적으로 있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외에서는 감독기관을 직접 상대하면서 그들의 관점과 삶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전문인들을 만나면서 네트워킹을 하고 벤치마킹을 하기도 한다.

 

세 번째로 컴플라이언스는 보람이 있다. 내부 통제를 개선하여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교육을 진행하여 잘 몰랐던 내규나 프로세스를 직원들에게 설명해 주거나, 정책이나 내규를 수정하면, 내가 만든 변화들은 회사 전체에 적용이 되고 직원들의 삶과 회사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감독기관을 상대하는 것은 과징금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대한 그들에게 우리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요구한 정보를 제공해 감독기관을 납득시킬 때 얻는 보람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컴플라이언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반부패, 반자금세탁방지, ESG, 공정거래, 개인정보보호 등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윤리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와 직원들이 옳은 행동을 하도록 이끈다는 고차원적인 보람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은 사회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부각되어 가고 있다. 90년대까지는 성장과 발전, 이윤 창출에 주력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자금세탁방지, 개인정보보호, 사이버보안 등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감에 따라 각종 규제들이 전 세계적으로 생겨났고, 해외 진출을 시작한 한국 기업들도 그 동향에 맞추어 다양한 컴플라이언스 이슈에 신경을 쓰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봐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많이 볼 수 없었던 준법지원인 포지션들을 이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준법지원인을 필요로 하는 시장의 모습이 관측된다.

 

회사에 따라 위험 분야는 다를 수밖에 없고, 집중해야 하는 법이나 규제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부 준법 제도 또한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매우 일반적인 예를 들면, 금융 기관은 아무래도 돈을 다루는 곳이니 자금세탁방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개인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테크 기업들이나 리테일 업체들은 개인정보보호법 및 사이버보안이 가장 큰 이슈일 것이다. 감히 장담하건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내재된 이슈들과 더불어 개인정보보호, 사이버보안, 반독점 등의 문제 또한 전 세계적인 사회 이슈로 점점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고, 컴플라이언스 분야도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를 분석하고 창의력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기는가?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가? 자신이 속한 기관 또는 업체, 그리고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고 윤리적이 되는데 기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컴플라이언스를 추천한다. 컴플라이언스는 충분히 재미있는 분야이다.

 

 

Ep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