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p 1. 결국 다 사람이다. by 카일

2024. 4. 30. 11:47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1. 결국 다 사람이다

 

 

건의드릴 것이 있어서 미팅 요청을 드렸습니다. 이런 이런 프로세스들은 왜 필요한 건가요?

세일즈 하는 데 여러모로 불편하고 시간만 끌게 되는데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을 해야 하는 건가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프로세스들의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한 번 보시고 없애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주십시오.”

 

난 외국계 기업에서 준법지원인으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일반적인 소송이나 계약서 검토 등을 담당하던 미국 변호사였는데 어쩌다 보니 준법을 전문으로 하게 되었다. 위 대화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약 2~3개월 정도 지나 아직 채 수습 기간도 안 풀렸을 때, 세일즈를 담당하시는 A 임원님께서 화상 미팅에서 따지듯이 피력한 불만들이다. 당시만 해도 아직 코로나가 다 풀리지 않아 대부분의 직원들이 집에서 일하는 분위기였고 갓 입사한 난 실제로 A 임원님 얼굴을 뵌 적조차 없었다. 아직도 업무 및 회사 분위기 등을 파악 중이었던 나에게 준법 관련 프로세스를 없애 달라는 말은 곧 내가 하는 일의 일부를 없애라는 말과 같으니, 미팅 내내 기분이 좋았을 리가 만무하다.

 

 

미팅 중에 같이 참석한 팀원이 내게 사이트 채팅으로 우스갯소리같이 한마디를 던졌다. ‘전임자분이셨으면 미팅 꺼버리고 그냥 나가셨을 거예요.’ 반농담이었겠지만 그만큼 황당한 요구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웃프게도 회사 내 다양한 준법 프로세스나 회사의 분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조차 아직 부족했던 나로서는, 자신 있게 황당함의 정도를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나보다 직급도 높고 나이도 많고 회사에 대해서 더 잘 아시는 분이 건의를 하시겠다는데, 공식적으로 답변을 해야겠지? 뭔가 어조로 봐서는 이상한 사람 같은데 약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강하게 무조건 반박해야 할까? 근데 왜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프로세스에 대해서 왜 새로 온 나한테 항의를 하는 걸까? 전임자와도 비슷한 얘기를 해 봤으려나? 한 번 전화해 볼까? 아니면 내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혹시라도 약발이 먹힐까 싶어서 찔러보는 건가?’

 

특히 난 외국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온 터라, 외국계 기업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첫 직장이니 모든 것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팅 중에는 그냥 두리뭉실하게 현존하는 프로세스를 그 정도의 이유로는 없앨 수는 없다고 하고 말았다.

 

준법지원인은 영어로는 Compliance Officer라고 불리는데, 한국에서는 준법감시인이라는 말도 흔하게 통용되는 듯하다. 사실 한국법상으로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난 감시인이라는 말보다는 지원인을 선호한다. 감시인은 꼭 반대편에 서서 스파이같이 직원들이 제대로 준법을 하나 안 하나 지켜보는 안 좋은 어감인 반면, ‘지원인은 인사부서같이 같은 편에 서서 다른 부서를 서포트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난 준법지원인이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선호한다. 

 

준법지원인의 의무는 간단하게 얘기하면 회사에 적용되는 규제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법적 리스크를 진단하고 내규 등을 관리하여 기업의 경쟁력 및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비유하면 군대의 헌병이나, 사내 경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감독기관을 대응할 때에는 축구에서의 최종수비수인 스위퍼 또는 골키퍼와 같은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매우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지만, 또 그만큼 외로운 포지션일 수도 있다. 만약 회사가 규제 위반으로 감독기관의 제재를 받게 되면, 과징금은 물론, 변호사 비용, 새로운 컴플라이언스 제도 구축에 따라오는 비용을 비롯하여, 때로는 민사소송에 휩싸이기도 한다. 당연히 그에 따른 평판 및 신뢰에 대한 타격은 심각할 수 있기 때문에 준법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사실 위와 유사한 불만들을 종종 듣는다.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맥락은 비슷하다. 가끔은 매우 정당한, 현실상 지키기 어려운 상황들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결국 불편하고 귀찮다는 말이다. 준법을 위해서는 여러 정책과 프로세스, 그리고 내부 통제를 만들어 놓을 수밖에 없는데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내부 통제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마치 은행 계좌와 관련하여 추가적인 인증 절차를 만들수록 보안은 강해지겠지만, 개개인 사용자의 불편함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개인적으로 준법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준법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관여한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프로세스들이 자동화되고 시스템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점점 그러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자동화된 프로세스 뒤에서, 거래내역이나 그 외 승인 요청 사안에 대한 세부내용을 검토하는 것은 많은 경우 결국 사람이다. ‘예외승인을 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고, 이슈가 복잡하거나 프로세스에 수정이 필요해서 논의를 하게 되면 그것을 팀이나 윗사람과 논의를 하는 것도 결국 자동화된 프로세스 가 아닌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외쳐도 결코 100% 객관적일 수는 없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감독기관에서 조사를 마치고 내리는 법적 효력이 있는 명령들을 보면, 조사를 받은 업체가 우호적으로 협력해 준 사실에 대한 크레딧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과징금을 깎아주는 경우가 많다. 감독기관들도 결국은 다 사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어느 정도는 주관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다 보니 외국 업체들보다 한국 협력업체들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되고, 사내에서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직원분들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 더 신경 쓰게 되고, 한 번 볼 걸 두 번 보게 된다. 반대로, 무작정 적대적으로 항의를 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은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되고, 마음속에 작성해 놓은 일종의 요주의 인물리스트에 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한 번 더 항의를 할 때에는 더 견고한 갑옷과 방패를 갖추고, 방어 태세 심지어 반격 태세를 취하게 된다. 다만 상대방은 모를 뿐이다. 내가 속으로 A 임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위 화상 미팅이 있은 지 몇 개월 후, A 임원이 일하고 싶은 협력업체가 있다고 하면서 데려왔는데 과거에 준법 관련 이슈가 있어 준법 절차에 따라 나의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A 임원에 대한 내 편향 또는 편견이 생겨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그 협력업체는 우리와 같이 일하지 못했다. 일단 A 임원이 데려왔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법무팀까지 끌어들여 좀 더 철저하게 검토한 결과, 과거에 있었던 준법 관련 이슈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만약 A 임원님이 정반대의 전략으로 나에게 우호적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카일 변호사님, 과거에 이 업체가 준법 관련 이슈가 있었던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경영진도 전면 교체되었고 준법 프로세스도 강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난 최소한 다른 각도에서 이 사안을 검토해 봤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준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으로 이직하기 전에는 꽤 긴 시간동안 미국 법률 회사에서 한국 수출업체들 및 무역 보험 회사를 대변하여 수출대금 관련 분쟁을 전문으로 했었다. 대부분의 분쟁 건은 결국 소송을 가더라도 협상이나 조정 등을 통해서 해결이 되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절차에서는 강력한 법적 논리를 바탕으로 받아낸 판결문이 분쟁을 해결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자산이 아예 없는 회사나 개인을 상대로 받은 판결문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판결문을 받아 내기 위해 밤을 새며 찾은 판례들과 법적 논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은 자발적으로 상대방이 협력할 의사를 표명하게 하고 협상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것이 많은 경우 제일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과는 사뭇 다른, 배울 점이 많은 외국인 리더들을 접하게 된다. 예컨대, 내부감사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어두운 톤의 정장을 입고 무조건 적대적으로 모든 서류와 정보들을 압수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조사 차원에서 인터뷰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리더를 보기도 하고, 나와 같은 준법지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상대방이 다가올 수 있는 카운슬러, 조언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냄으로써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위험 요소들을 인지하게 만드는 리더들도 많이 본다. 그 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이 깔려 있는 것 같다. 

 

HR로부터 인사 관련 필요한 사항들이 있는가? 법률부서의 검토가 필요한 법률문서가 있는가? 마케팅 부서를 통해 홍보해야 할 제품이 있는가? 구매부를 통해 구매해야 할 물품이나 용역이 있는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기 전에 요청을 받는 것이 단순히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한번 되뇌어보자. 그 사람의 이름 또는 타이틀을 불러 주고, 감사의 표시를 하고, 내가 필요한 업무의 배경을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보자.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개인적으로 관심도 표현하면 더더욱 좋겠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최소한 아직까지는 결국은 다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간관계의 바이블로 통하는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솝은 크로이소스 궁전에 살던 노예로 그가 가르친 교훈들은

25백 년 전 아테네에서만큼이나 현재 보스턴이나 버밍엄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햇볕은 바람보다 빠르게 코트를 벗길 수 있다.

친절과 우호적인 접근 그리고 인정은 세찬 위협이나 폭풍 같은 비난보다 훨씬 더 쉽게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링컨의 말을 기억하라. “벌꿀 한 방울에 한 통의 쓸개즙보다 더 많은 파리가 꼬인다.”

사람들을 당신 의견에 동의하도록 만들고 싶을 때는, 잊지 말고 네 번째 규칙을 사용하라.

규칙 4: 우호적으로 시작하라.”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4장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확실한 방법>에서

 

 

Ep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