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 - EP 1: 사내변호사의 '리포팅 라인' 이 중요한 이유 by 강유빈

2025. 1. 22. 11:50글로벌 기업에서 사내 변호사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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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

EP 1: 사내변호사의 '리포팅 라인' 이 중요한 이유

 

 

1n년차 사내변호사인 필자는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이 있다. 다양한 이유로 이직을 고려했지만, 돌아보니 그 중 상당수가 리포팅 라인(reporting line)과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리포팅 라인은 직속 상사나 상급자가 누구인지를 결정짓는 시스템으로, 쉽게 말해 누구에게 자신의 직무를 보고하고, 누가 나의 업무 성과를 관리하는 지와 관련된 것이다. 오늘은 이 리포팅 라인의 중요성과 그동안의 경험담을 나눠보려 한다.

 

첫 직장에서 나의 직속 상사는 입사 전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싱가포르에 있는 변호사였다. 국내파로 처음 외국인 상사를 만나 긴장도 많이 되었고, 싱가포르식 영어도 알아듣기 쉽지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영어를 알아듣기 시작했고, 업무를 하나씩 배워 나갔다. 그렇게 적응이 되어가던 중, 회사 내 지침 변경에 따라 국가별 프로젝트 팀을 운영하게 되었다. 나의 리포팅 라인은 법무팀에서 한국 사무실에서 진행 중인 한국 프로젝트 팀으로 변경되었고, 나의 상사는 해당 프로젝트 매니저로 바뀌게 되었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싱가포르의 변호사에게 보고할 때는 주로 법률 이슈, 즉 계약 검토 중 받은 코멘트와 수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면, 한국의 프로젝트 팀으로 리포팅 라인이 바뀌면서는 프로젝트 타임라인에 맞춰 계약 검토 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리포팅 라인 변경 후 변호사의 고유 업무 영역과 권한이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잘 되어야 회사가 운영되고 이익을 내니, 프로젝트 타임라인에 맞춰 계약을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것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계약 검토 과정의 중요성이 간과되면서 변호사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빨리 계약 체결을 하게 하면 되는 거라면, 변호사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닐까?’란 생각이 들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첫 직장에서 리포팅 라인 변경으로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며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 이직한 곳은 원래 법무팀이 없었는데, 필자가 합류하면서 새로 법무팀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글로벌 기업 내 한국 지사에는 법무팀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한국 오퍼레이션 팀은 해외 지사의 법무팀과 협업하거나 국내 법무 업무를 로펌에 위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시차나 문화 차이로 인해 해외 지사 법무팀의 피드백이 빠르게 오지 않으면 답답한 것은 한국 오퍼레이션 팀이다. 그래서 보통 법무팀 신설은 오퍼레이션 팀의 요청에 따른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도 한국 지사 재무팀 CFO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법무팀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입사 후에 알게 됐다. 해외에 있는 변호사들과의 소통이 어려워 피드백이 늦어지고 기업 지배 구조 업무등을 외부 로펌에 맡기고 있었는데, 비용이나 관리 면에서 직접 법무팀을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본사에 요청하여 승인을 받고 진행된 것이다.

 

이곳에서 필자의 리포팅 라인은 한국 재무팀의 최고 재무 관리자(CFO)와 미국에 있는 최고 법률 책임자(general counsel), 이른바 듀얼 리포팅 라인이었다. 한국 지사 법무팀의 초기 멤버(팀원이 없는 팀장)로서 한국 최고 재무 관리자에게 운영상 필요한 법적 절차와 문서를 보고했고, 동시에 최고 법률 책임자에게는 한국 지사가 준수해야 하는 회사 규정을 확인하고 관련 법률 이슈를 보고했다.

 

 

 

그런데 한국에 법무팀이 생기면 좀 더 빠른 법률 승인 절차가 진행될 거라 기대했던 한국 최고 재무 관리자의 바람과 달리, 내 선에서 승인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본사 법무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한국 지사의 법무팀은 본사 법무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본사에서 그간 한국 지사 운영에 몇 가지 탐탁지 않은 점이 있다고 여겨 조사 중이었기에 새로 진행되는 일을 빠르게 승인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에는 한국 최고 재무 관리자도 관련이 있어서 특히 재무 관련된 법무 승인이 지연되었다.

 

새로 팀을 꾸리는 것이 기회라고 생각해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이곳에 입사했던 첫 마음과는 달리,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나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던 한국 최고 재무 관리자는 결국 컴플라이언스 문제가 있음이 밝혀져 퇴사하게 되었다. 이후 본사 법무팀에서 업무를 주거나 정보를 공유하지 않게 되면서 중요한 회의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 놓였다. 흡사 투명인간이 된 듯한 좌절감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본사 최고 법률 책임자에게 미팅 요청 등을 했으나,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본사에서 한국 지사와 타 회사의 합병을 준비 중이었고, 이에 한국 법무팀의 서포트가 본사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연을 입사 전에 알 수 없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고난 속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애매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지와 조직의 흐름을 읽는 법 등을 배웠고, 새로운 팀 설립과 그간 외부 로펌에서 해온 업무를 인수인계받으면서 유수 로펌의 수준 높은 법률 서비스를 경험해 볼 수 있었기에, 최악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필자는 채용공고를 볼 때 꼭 리포팅 라인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듀얼 리포팅 라인의 경우, 애매해질 수 있는 상황을 예견하여 헤드헌터에게 포지션 채용 배경 및 회사 내 사정을 좀 더 꼼꼼히 확인하게 됐다. 리포팅 라인은 단순한 보고 체계가 아닌, 포지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임을 몸소 배웠기 때문이다. 이에 어떤 포지션에 지원할 때, 업무 효율성, 팀 내 협력, 그리고 개인의 업무 만족도까지 좌우할 수 있는 리포팅 라인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p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