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 - EP 2: 법무팀 없던 조직에서 존재감 있는 법무팀을 만든 변호사의 고군분투 by 강유빈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

EP 2 : 법무팀 없던 조직에서 존재감 있는 법무팀을 만든 변호사의 고군분투 이야기

 

 

한국에 있는 많은 외국계 기업들은 의외로 법무팀이 별도로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외국 본사의 법무팀에서 한국의 법무 업무를 커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국내의 경영지원, 인사 총무, 회계 부서 등에서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는 특히 글로벌 규모는 크지만 국내 사업 규모가 작은 조직에서 사업 지속성의 불확실성이나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채택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법무팀이 없는 조직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필자가 이직한 회사는 바로 그런 한계를 맞닥뜨린 상태였다. 이 회사는 국내에 법무팀이 없었고, 외국 본사의 법무팀이 한국의 법무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영업과 회계 부서 등에서는 본사 법무팀의 피드백이 느려 원활한 업무 진행이 어렵다고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결국, 회사는 마침내 새로운 법무팀을 국내에 만들기 위해 변호사 채용을 결정하게 되었다.

 

 

업무 경험이 많지 않은 3년 차 변호사였던 필자에게는 글로벌 기업의 본사 법무팀과 협업하여 한국에 법무팀을 만드는 일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새로운 도전이 나의 커리어에 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과감히 도전했고, 운 좋게도 그 포지션에 채용되었다.

 

하지만 “모르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듯, 그 당시에는 경험이 전무했기에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하라면 하기 힘들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실제로 법무팀이 없던 조직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재정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력 기간과 상관없이, 회사는 경력직을 채용하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길 기대한다. 필자의 회사 역시 어떻게 법무팀을 구축해야 할지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았다.

 

본사 법무팀은 회사의 법무 관련 규정, 지침, 절차를 공유하며, 필자가 이를 한국 사업팀에서 준수하도록 관리하고 감독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법무팀과 협업해 본 경험이 거의 없던 국내 조직은 본사 지침을 따르며 발생하는 추가적인 업무 부담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국내 조직에서는 변호사가 왔으니 즉시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되고 업무가 더 원활히 진행될 줄로 기대했으나, 기대와 달리 본사 지침 준수를 위한 교육 등 추가적인 업무 부담이 생기면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듯 본사 법무팀과 국내 조직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고, 이런 와중에 나에게는 법무팀의 역할을 글로벌 및 국내 조직 전체에 인식시키고 그 존재감을 확립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이 모든 일을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했기에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내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 필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의 법무 업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회사의 상황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계약 검토, 법적 리스크 관리, 규제 준수와 같은 중요한 업무들이 외국 본사의 답변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처리되다 보니, 한국 실정에 맞는 빠르고 정확한 대응이 어려웠다. 또한, 법적 전문성이 부족한 국내 사업 부서와 회계 부서 등이 국내 사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본사 법무팀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업무 지연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법무 업무 시스템과 절차를 정립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우선, 각 부서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법무팀의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정리했다. 각 부서에 적극적으로 미팅을 요청했고, 이를 통해 해당 부서에서 어떤 법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본사 법무팀에서 요구하는 지침을 확인하고, 법무 검토 절차를 본사 정책에 맞게 수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본사 법무팀은 회사의 지침을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변경하려는 시도를 반기지 않았다. 국내 사업 환경과 법률 실정이 본사 및 주요 서양 국가들과 차이가 있어, 자신들과 다른 절차나 규정에 대해 다소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난감하고 답답했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히 여러 번의 회의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국내 조직 입장을 설명했음에 불구하고 수용되지 않았을 때는 정말 절망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사 법무팀이 왜 그런 지침을 고수하는지, 그들의 우려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본사 지침을 기준으로 한국 사업과 법이 어떻게 다른지 리서치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교표를 만들어 설명해 보았다. 그 결과, 본사 법무팀은 점차 국내 법무팀의 입장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서로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문제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고, 본사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한국 내에서 원활한 사업 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법무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프로세스 구축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존에 영업팀이 직접 본사 법무팀에 계약 검토를 요청하고, 검토가 완료된 후 경영지원팀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던 절차를 한국의 법무팀이 계약 검토와 체결 승인을 모두 담당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계약 검토와 체결 과정의 시간이 크게 단축될 수 있었고, 계약 체결 과정에서 법무팀의 검토 의견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법무팀의 존재감도 높아졌다.

 

또한 회계팀이 외부 로펌 및 본사 법무팀과 협업하여 이사회와 주주총회등 기업지배구조 관련 업무를 진행했을 때는 일정을 놓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법무팀이 직접 관련 업무를 관리하게 변경하였다. 국내법적 요구사항 및 현지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법무팀이 담당하게 되면서, 필요한 자료와 문서가 제때 준비되고, 외부 로펌과의 협업 또한 원활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사회 일정이 준수되고, 의사결정 과정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회사가 체결하는 다양한 계약서들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각 부서가 사용하는 계약서 양식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을 통일하여, 일관된 형식과 내용을 갖춘 표준 계약서를 마련하였다. 계약서에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하고, 반드시 포함해야 할 법적 항목들을 본사 법무팀 및 외부 로펌과 협업하여 반영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회사가 체결하는 계약의 법적 리스크를 줄이며, 양식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불필요한 지연을 방지하고자 했다.

 

 

더불어, 외국 본사의 법무팀과 원활한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사업과 관련된 국내법의 특징을 정리하고 이를 설명하여 본사 측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본사와의 의사소통을 개선하고, 한국 사업 실정에 맞는 법적 대응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더불어 외국 본사와의 협업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한국 지사 법무팀이 관련 소통을 담당함으로써 조직 내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본사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본사와 한국 지사 간의 소통 부재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고, 이는 법무팀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법무팀은 단순한 지원 부서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조직 전체에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법무팀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외부 로펌과의 협업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회사 내부에서 법적 리스크를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 커지면서, 외부의 법률 서비스 의존도가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회사 비용 절감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법무팀이 없던 조직에서 존재감 있는 법무팀을 새로 꾸리는 과정은 정말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한국 지사의 각 부서와 본사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각 당사자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여 법무팀을 구성한 점과 이후에도 각 부서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수렴하여 법무팀의 역할을 확장했던 것이 조직 내에서 신뢰를 쌓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법무팀이 단순히 사업 부서에 법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리스크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회사 내 법적 리스크를 미리 예방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법무팀이 있다면, 그 팀은 회사의 성장에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 법무팀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법무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Ep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