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8. 16:09ㆍ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1. 다시, 학교를 찾은 이유
2023년 가을, 나는 다시 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나 오래 공부를 했으면서 또 그걸 한다고?”라고 했다. 대학교 4년과 로스쿨 3년, 20대의 대부분을 공부하고, 시험을 본 것은 맞다. 학창 시절을 합치면 사실 지금까지 한 것은 공부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공부를 해 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에도 많은 형태가 있을 것인데, 사실 내가 그동안 해 온 것은 ‘시험을 위한 공부’에 가깝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무수한 시험(내신 시험, LEET, 모의고사, 그리고 스펙을 위한 각종 외국어와 자격증 시험 등등)을 치르면서, 나는 시험에 특화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정답을 써내고, 남들과 경쟁해서 어느 기준점에 도달하거나 때론 그것을 넘어야 하는 것, 그런 ‘시험을 위한 공부’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한 시험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은 마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속 계속해서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과 같다. 그 속에서 법학적 방법론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고, 내 자아를 구해내는 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변호사가 되어서 로펌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맡았던 업무 중 ‘행정규칙의 효력’이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로스쿨에서 배운 대로 상위 법령의 위임 없이 제정된 행정규칙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 초안을 작성하였다. 딱 시험 답안지 수준의 글이었다. 하지만 실제 자문을 의뢰한 주무관님을 만났을 때, 각종 행정규칙들은 그 자체로 내부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상위 법령의 위임 여부와 관계없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에게는 강력한 법적 기준이자 업무적 규율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일로 나는 시험에서 모범답안을 쓰기 위해 공부한 지식과 실제 업무 현장에서 발휘해야 하는 능력 간에는 큰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그들에게 필요한 답은 교과서 속 모범답안이 아니라, 현장에서 끊임없이 질문하여 오랜 고민이 묻어난 변호사의 글인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어느 정도 ‘실무를 고려한’ 서면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당시 파트너 변호사님께서 프레데릭 샤워의 <법률가처럼 사고하는 법>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다. 책 서론에서 소개하는 ‘법학적 사고’ 또는 ‘법적 추론’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에서 시작하는데, 그 핵심은 최초(기존)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지금껏 ‘모범’ 답안 외우기에 급급했던 나에게 이는 꽤나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지식과 역량이 중요하고, 시험은 이를 평가하기에 효과적인 수단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고서 진짜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성 답안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부,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괜한 짓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즐겁고, 뿌듯하고, 감탄했던 순간들이 훨씬 더 많다. 도서관에서 여느 학생들처럼 두꺼운 책을 쌓아 놓고, 챗GPT의 도움을 받아 과제 논문을 쓰거나 시험공부를 하고 있으면 가끔 내 본업이 헷갈리기도 한다. 그래도 가끔 귀중한 기회로 토론회, 학회, 해외연수를 가서 교수님, 학자,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는 법조인 동지분들을 만나면 다시금 가슴이 뛰고 벅차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법률가, 또 이를 위해 공부하는 변호사. 이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 갈 내 본업이다.
Ep 2.에서 계속........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 4. 회색 지대에서, 결국 문제 해결의 시작은 학문으로부터 by 이시원 (0) | 2026.03.18 |
|---|---|
|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 3. 비즈니스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 들과 사내변호사의 전문성 by 이시원 (9) | 2025.08.13 |
| 세상을 바꾸는, 질문하는 변호사 - EP 2. 각주구검 이야기 : 법, 물 흘러가듯이 사람의 품으로 by 이시원 (12) | 2025.06.11 |
| 작가소개 - 변호사 이시원 (2)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