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9. 12:07ㆍ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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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5. 여자 변호사로서 버티는 건 쉽지 않다.
최근 <굿파트너>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높다 보니, 주변 변호사들이 그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법정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일단 낯간지럽다. 해결되기 어려운 사건을 척척 해결하고 심지어 영화의 히어로나 탐정처럼 증거까지 수집하는 능력이 출중한 변호사, 권모술수에 능한 능구렁이 같은 변호사를 보면, 나랑 너무 다르고 왠지 비교되어서 보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굿파트너>는 나에게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었다. 바로 서브 남주인 정우진 변호사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여자 변호사인 차은경 변호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조용하고 묵묵히 그녀를 지원해 주는 역할이다. 물론 그러한 감정의 밑바닥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건 일단 별론으로 하겠다. 내가 만나거나 주변 여자 변호사들에게 들은 남성 동료들은 승진, 좋은 사건에 대한 배정 등과 같은 상황에서 여성을 견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여성 동료를 지지해 주는 상황은 생전 들어보지 못했다.
아는 여자 변호사들과 수다를 떨면서 “정우진 변호사, 너무 판타지적인 인물이다”라고 이야기하다가 문뜩 궁금해져서, 작가의 인터뷰를 검색해 보니 실제 변호사인 작가가 바라던 이상적인 남자 동료를 캐릭터로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역시나 그렇지. 정말 나도 오랜 로펌 생활을 하면서 옆에 있었으면 하는 남성 동료의 모습이니까. 어떤 신문기사에서 여성 변호사를 존경하고 깊이 좋아하는 정우진 변호사보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질투하고 견제하는 남자 동기 권민우의 존재가 더 현실적이라고 하였는데. 맞다. 그게 더 현실적이긴 하다.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내가 고3 시절 법대에 원서를 넣겠다고 하니 한 여자 선생님이 너무나 진지하게 ‘자기 오빠가 고시 공부를 했는데 고시가 잘 안되더라. 여자가 어려운 길 가지 말라’면서 나에게 다른 과(아마 영문과)를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 주셨다. 막상 법대에 들어가니 300명 정원에 여자가 한 70명 정도 되었는데. 선배 및 교수님들이 “와 정말 여자 많다.”라고 놀라던 게 기억난다. 지금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때 90년대 학번들은 그랬다. 처음 변호사 사무실에 입사해서도 나보다 선배인 여자 변호사는 한 분도 없었고, 그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여자 국장님도 있고 여자 과장님도 여럿 있지만) 당시에는 여자 과장님이 없었다. 그 이후 다시 로펌에 와서도 공정거래팀에는 나보다 선배인 여자 변호사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같은 팀에 선배 여자 변호사님이 있었던 적은 없다.
20년간 법조계에서 일하는 동안 주변에 여자 변호사들은 많이 늘어났지만, 나에게는 롤모델이 되어 줄 여자 선배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즐겨 보는 TV프로 중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가 있는데, 그 프로를 보면, 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고, 그 문제부모의 상당수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은 경우이다. 즉, 사랑받은 부모가 자식도 잘 사랑해 줄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여자 선배 변호사, 특히 내가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분야의 여자 선배를 가진 적이 없다. 그래서 “여자 변호사로서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앞으로 경력이 쌓이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라는 감이 전혀 없어서, 그저 불안하고 외롭게 버텨왔다. 그리고 나 또한 선배에게 배운 것이 없어서인지 여자 후배들에게 마음은 있지만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직업 세계에서 남자, 여자가 뭐 그리 다르냐고, 여자 선배가 없는 것에 대하여 왜 그리 징징거리냐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여자라고 차별을 받았다는 거냐?”라고 불쾌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유리천장, 여성의 차별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절친이 대학교 때 여회 회장을 했었지만, 여성 문제에 그리 적극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선배, 동료, 후배들의 대다수가 남자인 변호사 업계에서, 남자 변호사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리 매김을 해야 할지 고민이 있는 여자 후배들에게 언니로서, 여자 선배 혹은 후배들을 도저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남자들에게 그저 여자 변호사로서 내가 느낀 마음을 이야기해 보고 싶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여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대하거나 나를 다른 남자 변호사들과 차별한 선배 변호사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조직 내에서 남자 변호사들과 어울림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고, 고객인 기업 법무팀의 의사 결정권자가 대다수 남자인 현실에서 고군분투한 것도 사실이다.
남자 변호사들은 고객과도, 로펌 내 팀장 등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도 쉽게 형, 동생 하면서 친해지는데 여성 변호사는 남성 고객에게 친해지겠다고 형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오빠라고 하기도 어색하고, 이래저래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가 조심스럽다. 우리가 흔히 잘하는 “언제 소주나 한 잔 해요.”를 내가 남성 고객이나 남자 변호사에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는 옥상에서 담배 피우는 자리에 어울리기도 어려웠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적당한 시점에 여자인 내가 집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늘 눈치가 보이는 술자리였다. 지금까지 20년간 남성 위주의 환경에서 어떠한 처신이 올바른 것인지 늘 고민이 되었고, 그래서 많이 외로웠다.
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 제목처럼 변호사 세계에서도 남자, 여자는 그리 다르고 궁극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운 것일까? 이 시리즈의 취지가 ‘로펌에서 살아남기’이므로, 그렇다면 뭔가 살아남기 위한 좋은 팁을 주고 싶은데, 딱히 이 주제에 대하여는 좋은 팁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서로 간의 입장을 이해하고, 남성과 여성이 조직에서 동료로서 공존하는 즐거운 조직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몇 자 적어본다.
▶ 남자 변호사들에게 말하고 싶다.
1) 여자들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자. 여자들은 남자들과 그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를 원한다. 남자 후배에게 하듯이 업무를 부탁한다고 하여 불만을 가지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2) 여자라서 특별히 배려해 준다고 하면서 거리감을 두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고 업무 기회에서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굳이 회식 자리에서 얼른 집에 가야지 하면서 일찍 보내지 않으셔도 된다.
3) “여자라서 소극적일 것이다. 여자라서 부탁을 쉽게 거절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지 말자. 사회 경험을 해 보니, 소극적인 것은 남녀 차이가 아니라 사람 성격의 차이다. 여자도 적극적일 수 있고, 남자도 소극적일 수 있다.
▶ 그리고, 여자 후배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1) 우리가 먼저 남자 변호사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노력해 보자.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의사 결정권자와 자주 접촉하고 그들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남자 변호사, 특히 선배인 남자 변호사를 대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선배들 중에는 남자들이 많고, 앞으로 최소 10년은 여전히 남자 변호사들이 조직 내 의사 결정권자 중 다수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러니, 남자 변호사들과 잘 어울리는 것 또한 변호사로서 중요한 덕목이다. 물론, 나도 선배 남자 변호사들과 대화가 편하지는 않아서 그들을 많이 피해 다녔다. 그런데 나도 선배가 되고 보니 서툴지만 후배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남자 변호사 입장에서도 여자 후배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으나, 다가서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에게 기회를 주자.
2) 현재 주어진 일 외에도 넓고 멀리 바라보자. 흔히 여자 변호사들은 어쏘 변호사 시절에는 주어진 일도 잘하고 능력을 발휘하지만 연차가 올라가고 각종 정치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단계가 오면 주류인 남자들의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소극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주어진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는 변호사 또한 개인의 브랜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 후배들이여, 꿈을 크게 가져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
3) 여성 사이의 연대도 생각해 보자. 물론, 남자들과 담을 쌓자는 것이 아니다. 여자 변호사끼리 업무적인 측면에서 비전과 성과를 공유하고 같이 일을 도모해 보자. 여자의 강점이 발휘되는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하고 싶다.
처음 시작할 때는 20대 중후반의 남자들만 가득한 팀 내 막내 여자 변호사로서, 그 이후에는 언제나 팀 내 가장 나이 많은 여자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늘 불안하고 방황하던 주변! 지난 20년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잘 견디고, “아 저분 여자 변호사로서 좋은 롤모델이다.”라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도, 그저 버티어 온 것만으로도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 나의 이런 고민의 글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아니 그런 고민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고 누구나 놀라는, 정우진 같은 남주가 드라마 속 환상이 아닌, 그냥 내 옆의 동료인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우진 변호사 같은 남성 동료들과 원탁에 앉아 업무 및 조직 운영에 대한 의논을 하면서 우리의 조직을 만들어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꾼다. 우리 후배들은 꼭 그런 날을 만들어 줄 것이다.
Ep 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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