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9. 15:32ㆍ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6. 나도 이제 그만 진지하고 싶다 (웃음으로 힐링하는 명동밥집 봉사)
세상에 쉬운 일이 뭐 있겠냐마는, 변호사도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일단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 중에 즐거워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승패가 있다 보니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전전긍긍하게 되고, 결과가 안 좋아 고객과 마주할 때에는 어지러울 지경이다.
개인적인 스트레스는 “그냥 내 팔자려니.”하면서 훌훌 털어버리곤 하는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업무의 특성상, 업무 관련 스트레스는 “그저 그 사람 팔자지.”라고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원영적 사고’를 적용해 보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3억 원을 처분받은 기업 담당자에게 “10억이 나올 수도 있었는데, 3억이면 당신 럭키비키잖아.”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별개로, “과연 내가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어떤 날은 ”국가 기관으로부터 조사받는 사람들의 잘못된 부분을 내가 변호하고 있으니 나는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과 혼란이 들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변호사는 연간 20시간의 공익 활동 시간을 채울 의무가 있다. 지인 변호사들 중에는 이 공익 활동 시간에 성범죄 피해자를 변호하거나, 사회의 약자를 위한 법을 제정하기 위해 투쟁하는 훌륭한 변호사들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규제하려는 국가 기관과 이를 피하고자 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쌓인 피로감 때문에 공익 활동만은 업무와 상관없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공익 활동을 하는 부서에서 불교 단체 배식 봉사 지원자를 모집하는 메일을 받았다. 점심시간에 하는 일이니 큰 부담도 없어서 즉흥적으로 신청을 했다. 그날 내가 맡은 봉사는 사람들이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분에게 전달하고, 탁자를 깨끗하게 닦는 것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2시간 정도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몸은 힘들었다. 그런데, 탁자에서 그릇을 치워드릴 때마다, 사람들에게 밝게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셨어요? 그릇 치워드릴까요?” 큰 소리로 인사를 계속하니, 정말 신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뜻하지 않은 봉사 활동 후에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는 한 번도 “고객님, 잘 오셨어요.”, “제 자문 내용이 맘에 드셨어요?”, “기분 좋으셨어요? 언제든지 또 오세요.”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고객을 만나는 상황은 늘 진지하니까. 진지하게 말하다 보니 늘 경직된 상태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런 생활을 20년 이상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석에서도 많이 안 웃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내 주변 변호사들을 봐도, 원래 진지한 성격이라 변호사가 된 건지, 변호사를 하다 보니 진지한 성격이 된 것인지 선후는 알 수 없지만 잘 안 웃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내가 맛집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어찌 보면 내 바람은 고객에게 맛집 주인같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나 보다. 밝게 웃으면서 사람들을 반기고, 이 순간만큼은 그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곤란한 상황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고, 따뜻하게 그저 밥 한 그릇을 건네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 정말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검색을 통하여 명동성당에서 하는 명동밥집을 알게 되었고(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2022년 8월부터 봉사를 시작하였다. 명동밥집은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에 운영되고, 봉사는 요일별로 오전, 오후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격주로 참가하게 된다. 나는 매월 격주 홀수 일요일 오전 배식 봉사를 신청했다. 카카오톡 단톡방에 공지가 이루어지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참석 여부를 투표하는 시스템이라, 사정이 있으면 참석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배식 봉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금 설명해 보자면, 식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성당 마당에 크게 천막을 치고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를 운반해 와서 식당 자리를 마련한다. 모든 음식은 건물 지하 주방에서 만들어지므로 음식이 만들어지면 마당으로 운반해야 하고, 식기와 설거지 거리도 일일이 운반해야 한다. 봉사자들은 아침 9시 20분에 모여, 마당에 천막을 쳐 식당을 만들고, 배식하는 곳에 음식을 채우고, 식기를 정리한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조는 8시부터 음식을 마련한다.
11시부터 배식이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번호표를 받고 마당에서 대기를 한다. 11시가 되면 봉사자 전원이 천막 밖으로 나가 식사하러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업무를 진행한다.
역할을 간단히 소개하면, 입구에서 번호표를 배부하고 순서에 맞게 입장을 시키는 봉사자, 배식을 하는 봉사자(불고기덮밥이 메뉴이면, 한 명은 밥을, 한 명은 불고기를, 한 명은 계란후라이를, 한 명은 김치를, 한 명은 국을 차례로 나누어 준다.), 배식받은 음식을 탁자로 나르는 봉사자(음식은 봉사자가 탁자에 가져다주고, 그 이후에 식사하는 사람이 와서 식사를 한다.), 퇴식구로 먹은 식기를 운반하는 봉사자, 탁자를 치우고 닦는 봉사자(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일어나면, 다 먹은 그릇을 퇴식구로 가져가는 역할을 하는 분이 그릇을 옮기고, 다른 사람은 탁자와 의자를 소독약으로 닦는다.), 무한 리필 봉사자(명동 밥집은 무한 리필이라, 손을 들어 리필 요청을 하면 제한 없이 음식을 채워 준다.) 등 다양한데, 경력자이든, 초보자이든, 서로서로 도와서 봉사자들 사이에 손발이 잘 맞는 편이다.
나는 3년 정도 하다 보니 위 역할을 다 해 보았는데, 각 역할마다 나름의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다. 배식은 음식량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국의 건더기와 국물 양의 조화로운 배식은 진짜 고난도다. 탁자와 의자를 닦는 역할은 자리가 비면 신속하게 치워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팔이 아플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탁자와 의자 닦는 역할이나 무한 리필하는 역할을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식사를 하는 사람들 옆을 오고 가는 역할이어서, 사람들에게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블랙리스트에 오를 만큼 신경질적인 분도 있지만, 대부분 같이 웃어 주시거나, 맛있게 대접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 주신다. 나는 큰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은근히 즐겁다.
지금까지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혹시나 내가 잘못된 자문을 하게 될지, 내 자문 내용을 고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염려하면서 긴장되게 살아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나를 찾아오는 고객에게 미소를 띠며 고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그저 따스하게 맞이하고 싶다. 명동밥집에서 식사를 대접할 때 그 사람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지 않듯이 말이다. 물론 (변호사를 찾을 일이 많이 생기면 안 되니) “또, 오세요.”라고 크게 외칠 수는 없겠지만, ‘이왕 변호사가 필요하다면 다시 나를 찾아달라’고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고 싶다.
칼질도 서툴고 몸으로 하는 일은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차라리 돈을 열심히 벌어서 기부를 많이 하라’고 엄마는 조언하시지만, 나는 마음껏 크게 웃으면서 소통하는 따스한 이 분위기를 자주 느끼고 싶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요일 아침에 명동성당을 향한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변호사 생활 동안에는 봉사활동을 통해 깨달은 이 따뜻함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다. 법적 조언은 정확하고 냉철하지만, 조언을 전달하는 방식은 조금 더 따뜻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p 7.에서 계속........
'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5. 여자 변호사로서 버티는 건 쉽지 않다. by 주현영 (4) | 2024.10.19 |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4. 고객 지갑을 열기는 어렵다. by 주현영 (2) | 2024.08.05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3. 선배 노릇도 쉽지 않다. by 주현영 (25) | 2024.06.12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p 2. 내부 고객 만족시키기 참 어렵다. by 주현영 (66) | 2024.04.24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p 1. 로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by 주현영 (12) | 2024.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