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5. 16:44ㆍ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4 : 고객 지갑을 열기는 어렵다.
에피소드 3개가 소개되고 나니 나름 주변의 반응이 있었는데, 그러한 반응을 보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말 솔직하다. 나 또한 용기를 얻었다.”라고 환호해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솔직하게 써서 회사 대표 변호사가 봐도 괜찮겠느냐.”라고 걱정도 해 주고, 어떤 사람들은 “변호사가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야지. 이런 약한 모습을 드러내서 경력에 도움이 되겠느냐.”라고 충고를 해 주기도 한다.
뭐 하여튼, 앞의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변호사는 ‘첫째도 영업, 둘째도 영업, 셋째도 영업’이다. 그런데 영업은 답이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유명했던 책 제목인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처럼 공부, 시험은 노력하면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는 것 같은데, 영업은 정말 답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법 위반에 따른 리스크를 강하게 말하면 고객에게 ‘저 변호사 부정적이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인상을 가지게 하고, 반대로 리스크를 약하게 말하면 고객에게 ‘저 변호사 너무 긍정적이다. 제대로 된 평가를 안 하는 것 같다. 수임하려고 능력을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수임료를 높게 이야기하면 “요즘 수임료 싸게 해 주는 곳도 많은데, 영 감이 없다. 뭐 변호사 비용이 그리 비싸냐?”라며 발길을 돌리고, 수임료를 낮게 이야기하면 “그 돈 받고 제대로 할 수는 있는 거냐, 영업이 안 되는 변호사인가 보다.”라는 반응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요즘 변호사로서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고객이 나를 찾아와서 지갑을 열게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잘 팔리는 물건을 보거나, 줄이 긴 음식점을 보면, ‘왜 이 물건이 잘 팔릴까? 왜 그 음식점만 줄이 길까? 과연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일까?’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내 기준으로 보더라도 단돈 1,000원을 쓰는 경우에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지, 그 값어치를 하는지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게 된다. 즉 남의 지갑에서 돈이 나오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게 하려면 그 물건, 그 서비스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그 만족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그것을 사용할 때 자랑스럽거나 긍지를 가지게 되는 데서 올 것이다. 그런데, 그 만족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내 에피소드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만큼이나 다양하고, 그래서 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어려운 숙제이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한 반응 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이나, 줄을 길게 서는 맛집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나도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먹고 나서도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만족하는 맛집 같은 변호사 말이다!!!
과연 나는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하여 지난 20년간 어떠한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했는가? 그냥 지금까지 변호사로서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한번 적어 보고자 한다.
첫째, 나는 고객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고객의 스케줄을 우선으로 고려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업무 영역도 그렇지만, 변호사들은 갑자기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 6월에는 외국에 사는 조카들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와서 조카들이랑 놀아주랴, 회사 업무하랴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7월을 시작하는 첫 주말에는 정말 처절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는 주말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불금에 마사지도 예약해 놓았다.
금요일 5시 50분에 룰루랄라 퇴근하고 6시 30분에 야심 차게 마사지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전화벨 소리와 스마트폰 화면에 뜬 “000 팀장님”. 이 시간에 이메일도 아니고 전화라니, 불길하다. 순간 안 받을까도 고민했지만, 금요일 저녁 6시 30분에 전화를 함에는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목소리 톤을 도레미파’솔’로 높여서 “아,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라고 전화를 받았다.
지난번에 간단히 구두로 자문해 준 내용인데, 막상 임원 보고를 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으시다고 한다. “아 그러세요. 팀장님.”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월요일 아침에 보고를 해야 해서 일요일 오후까지 그것도 이메일로 정리하여 달라고 하신다. 순간 머리 속에 나의 주말의 계획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전화를 받으면 짜증이 나고 괴로웠지만, 내가 누구인가? 21년 차 변호사가 아닌가? 21년 차 변호사의 내공으로, 일단 잘 알겠다고 고객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임원 보고라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내가 일요일까지 정확한 답을 해 줄 거라고 나를 믿고 전화를 주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하하하’라면서, 나만의 정신 승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을 먹고 출근해서 폭풍 업무 처리로 일요일 아침에 이메일로 답변을 정리하여 보냈다.
둘째, 나는 늘 솔직함을 가장 우선하는 가치로 두면서도, 고객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때로는 과장되게 긍정적인 태도로 고객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 무슨 모순적인 행동인가 생각하겠지만, 모두 고객을 위한 내 방식이다.
변호사 시작부터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정확하게 대답하려고 늘 노력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는 내가 모르는 것을 바로 모른다고 대답하면 혹시 고객이 나를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불안을 느끼고, 더 나아가 다른 변호사에게 가 버리는 건 아닐지에 대한 걱정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때로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그래서 고객과 회의만 하면 늘 녹초가 되고는 했다. 그리고 추후에 잘못된 결과에 대한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다소 부정적으로 보수적인 자문 의견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한 내가 위선자 같아서 괴로워하고 자신이 없어 보수적인 자문 의견을 주는 내가 무능력한 것 같아서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변호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니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모르는 것을 너무 솔직하게 대답하면 고객이 불안할 수도 있으니 일단 알겠다고 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고 고객을 위하는 것일 수 있다고. 또한, 추후 항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내 맘속의 불안과는 별개로) 다소 과장된 긍정적인 태도로 고객에게 힘을 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말이다. 쓰고 보니 모순된 내 행동에 대한 정신 승리 같아 보이지만,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행동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피부에 난 잡티를 해결하기 위해 큰마음을 먹고 피부과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피부과 선생님이 나중에 내가 항의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계속 “고객님의 피부 상태는 레이저 몇 번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라고 강조를 한다. 근데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 보니 괜히 화가 난다. 내 피부가 잡티가 많은 체질이고, 몇 번의 레이저로 만족할 정도의 개선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잘 될 수 있다, 좋아질 수 있다, 개선될 수 있다’고 다소 과장된 리액션으로 고객인 나에게 좀 용기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나도 선생님과 함께 잡티와의 전쟁을 할 힘이 생기는 것 아닌가, 너무 솔직한 태도는 시작도 전에 진이 빠져 버린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고객에게 여정을 함께 할 힘을 주기 위하여 긍정의 에너지를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아니 잡티가 없어진다고 해서 돈을 지불한 건데, 이게 뭐죠? 내 얼굴에 여전히 잡티가 가득하잖아요, 당신 거짓말한 거예요.”라는 항의를 듣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긍정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서 잡티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고, 건강하고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만들어 내고 말 것이다.
셋째, 나는 고객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보통 사람들은 변호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변호사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이야기하기 어려워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는 흥분하여 그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함에 어려움을 겪는데, 이것을 잘 듣고 정리해 주는 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다. 간혹, 변호사 중에는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그건 법 위반이네, 그건 당신의 잘못이네.”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딱히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나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다. 일단 보기에는 법 위반으로 보이는 행동도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이나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잘 들어보면 행정기관이나 법원에 어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절대 고객의 행위가 법 위반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고객이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를 이해하려고 고객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규제기관에 그러한 사정을 설득하고자 노력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노력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구슬처럼 잘 꿰어서 예쁜 목걸이를 만드는 마음으로 고객의 편이 되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나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결국 고객과 변호사의 관계도 인간관계이다. 나는 주로 기업의 법무팀 직원이 고객인데, 처음 변호사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고객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점점 경력이 쌓이면서 법무팀이나 컴플라이언스팀의 직원들과 나이가 비슷해지거나 때로는 고객이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도 생겼다. 특히 여자 직원 같은 경우에는 팀 선배들 눈치를 보거나, 현업 부서에 사실관계 확인 등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맘이 쓰이고 여동생 같은 친근감도 생긴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업무적인 면에서 이런저런 고민도 들어주고, 가끔은 그 팀 팀장, 아니면 규제기관 공무원 흉도 보면서 친해지고 조그마한 전우애도 생긴다. 21년 동안 일하다 보니, 업무로 만났지만 좋아하는 친구, 동생들이 많이 생겼는데, 언젠가 그들이 기업 내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여 나에게 업무를 많이 맡기는 상상을 해 본다.
결론적으로, 고객이 나를 찾는 것,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상황에서 나를 기억해서 찾아주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고, 그 누군가가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로 인해 도움을 받는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나는 오늘도 “줄을 서시오!”라고 외치면서 번호표를 나누어 주는 맛집 주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골치 아픈 사건들에 파묻힌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맛집 같은 변호사’가 되는 희망을 가져 본다.
Ep 5.에서 계속........
'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5. 여자 변호사로서 버티는 건 쉽지 않다. by 주현영 (4) | 2024.10.19 |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3. 선배 노릇도 쉽지 않다. by 주현영 (25) | 2024.06.12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p 2. 내부 고객 만족시키기 참 어렵다. by 주현영 (66) | 2024.04.24 |
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p 1. 로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by 주현영 (12) | 2024.03.27 |
작가소개 - 변호사 주현영 (1) | 202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