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7. 11:17ㆍ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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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6. 후회 없는 직장 생활
오늘은 좀 색다르게 준법과는 관계없는 회사 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내가 소속된 회사는 한 건물에 여러 층을 쓰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회사의 직원으로 보이는 30~40대의 직원 둘이 최근에 있었던 조직 변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냥 눈에 별로 안 띄는 위치에서 적당히 하는 게 최고지. 괜히 나설 필요 없어.”
흔히 말하는 ‘중간만 하자’는 말이었다. 솔직히 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지 감정적이나 현실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괜히 나서 봐야 일 잘한다고 일만 더 시키거나 하기 싫은 일을 시킬 수도 있고, 잘못 나서면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다른 부서와의 불필요한 노이즈만 발생시킬 수도 있고, 또는 회사의 분위기에 따라서 그냥 일반적으로도 모나지 않은 사람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문화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좀 더 나아가, 나섰다가 발생하는 불협화음은 직장에서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매달 나오는 마약과 같이 달콤한 월급과 각종 혜택을 가늘고 길게 누리고 싶은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랴. 어쩌면 한때는 열정과 패기가 가득했지만,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괴물 생명체 앞에서 번번히 좌절을 당하며 그 괴물의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AI의 진보로 여러 대기업에서 칼바람이 부는 이러한 시기에는 더욱더 이해가 간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도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고 자동화시키면서 수많은 인사이동이 내외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화석처럼 회사에 오래 계셨던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나름 자기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나 변화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부정적이고, ‘원래 이렇다.’라는 생각으로 안 되는 이유를 수만 가지 쏟아 낸다. 이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중간만 해서 눈에 특별히 띄지 않기를 원하고, 강한 사람들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강하고, 잘 모르는 새로운 입사자에게는 원래의 방법을 고수하며 텃세를 부리기도 하고, 아니면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부서의 영역을 확실하게 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인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결국 조직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항상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는 잠재적인 위협에 대한 일종의 방어 전술인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조용하게 자기 할 일만 하면서 나서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영역만을 확고하게 하는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오래 살아남고 성공하는 경우도 아직까지는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점점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방어 전술’이 얼마나 더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반면, 회사 내에는 1~2년 정도의 짧은 계약직으로 고용이 되는 직원들도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장애인이다. 어려움을 겪고 살아온 삶의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적극적이고 열심히 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종종 목격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직원 중의 하나와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약간 말투가 어눌하고 다리를 살짝 저는 모습을 보이는 분이었다. 항상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일을 할 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서슴지 않고 질문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 식사와 커피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어린 직원이었는데 식사 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나와 유사하게 미국 유학을 하고 대학교까지 공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큰 자동차 사고를 당해 두뇌를 포함한 몸의 여러 군데에 장애가 생겼고, 1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며 얘기를 하다 보니, 목 부위에 당시 호스를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뚫었던 상처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원래는 대학교를 마치면 나와 같이 법대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그때 자동차 사고로 그 꿈을 접어야 했고,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기회가 생겨서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오래전에 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물리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해서 평일에는 회사 근처에 계신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물리 치료를 받고 출근을 하고, 주말에만 서울 밖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딸과 아내와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족이랑 떨어져 지내면서까지 매일 출근하는 것이 괜찮냐는 질문에 그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전 평일에 가족이랑 떨어져 지내면서 매일 출근해도 상관없어요.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너무 감사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물리 치료만 받고 말도 더 어눌하고 몸도 더 안 좋았는데 일을 하면서 많이 호전되었어요. 5년만 회사에 있을 수 있어도 너무 행복하겠어요. 아니, 5년이 아니라 단 2~3년 만이라도 더 있을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어린 자녀를 둔 한 아버지이자 유학생 출신인 나에게는 이 짧은 대화가 심금을 울렸다. 밑바탕에 깔린 이러한 생각이 아마도 일하는 태도에도 반영된 것이었던 것은 아닐지. 무엇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간만 하기’로 결심한 직원들과는 대조되었다.
속사정이야 다 알 수가 없고 살아온 인생도 다 알 수는 없지만, 청소년기에 유학을 하면서까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던 그의 젊은 시절이 유학생 출신인 나와 비슷하여 더 가슴을 울렸다. 그 청년은 한순간의 사고로 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지금은 있는 위치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나 자신이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 또한 돌아보게 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 능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자주, 심지어 항상 잊고 살아가는 걸까? 그러한 노력이 심지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자세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결과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는 멀 수도 있다.
성공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들이 성공을 좌지우지한다. 일례로, 빌 게이츠가 컴퓨터로 큰 성공을 이루게 된 일화가 있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68년 그가 자라난 시애틀 외곽에 있는 레이크사이드 중등학교의 빌 두걸이라는 한 교사가 자선 바자회 수익금 3,000달러를 어머니회에 요청함으로써 시작된 스터디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일반 교과과정이 아닌 독립적인 스터디 프로그램에서 빌 게이츠는 컴퓨터를 처음 접했고, 그때부터 컴퓨터 회사를 창업하는 꿈의 새싹을 피우게 된 것이다.
당시 시애틀이 위치한 워싱턴주의 인구는 27만 명이었고, 빌 게이츠가 학교를 다니는 시점에 레이크사이드 중등학교를 다니며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던 사람은 300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빌 게이츠가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엄청나게 낮은 확률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이 학교의 졸업식 연사로 찾아가 ‘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이 학교에서 컴퓨터를 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직업인으로든 사업가로든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여건, 즉 ‘운’이 따라와야 한다.

빌 게이츠의 케이스에서와 같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노력 외에도 운이 따라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적당하게 중간만 하는 노력만으로는 성공적인 직장 생활도, 정년퇴직도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조용히 중간만 지키면서 일을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예산 때문에 한 부서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하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요즘은 AI의 도입으로 프로세스가 단순화되면서 인원 감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매우 씁쓸하게도 얼마 전 같은 팀 동료와 내 입사 동기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다.
많은 일들이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 요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중간 이상을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후회가 없기 위해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이든, 타이밍이든, 다른 사람 때문이든 자신의 컨트롤 밖에 있는 요소 때문에 뜻대로 안 되면 그때는 후회가 없다.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항상 더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거기에 보너스로, 그렇게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다 보면 빌 게이츠의 경우와 같이 통제할 수 없었던 외부 요건들이 사람의 잠재 능력과 더해져 성공을 이루어 내기도 한다. 빌 게이츠의 경우는 아무래도 피부에 와닿지 않겠지만, 나와 같이 법대 진학을 같이 준비하고 법대에서 공부했던 동문들이 현재 이름 있는 기업의 팀장이나 임원의 역할을 현재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소싯적 고생하던 그들의 모습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며, 그들이 성공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들의 성공은 ‘운’과 같은 외부 요인들과 소싯적부터 가지고 있던 ‘성실하고 적극적인 태도’와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잠재력’이 더해져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장애인 직원분도 오래전에 겪은 교통사고 때문에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와 같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장애인이 되어서도 나와 같은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비록 계약직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직장에서 벌어지는 조직 변화를 보면 정규직이라고 해도 계약직과 크게 다른 것은 없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중요한 워라밸을 포기하라는 얘기도 아니고, 회사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서 실패가 없을 것이라는 말은 더욱 아니다. 다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점점 없어지고, 통제할 수 없는 여건들이 점점 많아지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나에게 내재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직장에 있는 동안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더 현명한 전략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나중에 나 자신에게도 후회가 없는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p 7.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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