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p 5. 준법 변호사로서의 미국 생활 by 카일

2025. 2. 12. 11:49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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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5. 준법 변호사로서의 미국 생활

 

 

얼마 전에 나와 열 살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 동생이 본인의 친구가 준법 쪽 일을 하는 미국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니 조언을 해 달라고 해서 만났다.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어도 법대를 가기 전부터 구체적으로 준법 쪽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내고 만났다.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당연히 여러 질문 중의 하나는 어떻게 해서 준법 변호사가 되었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의 취지는 어떻게 하면 본인도 준법 변호사가 될 수 있냐는 것이겠지만, 막상 멋있게 어떤 말을 해 주려니 아쉽게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 외에는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준법 변호사로서 겪었던 일들, 미국에서의 생활, 현재 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준법 변호사가 왜 특별한 직업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나는 대로 설명을 해 준 것 같다.

 

 

사실 내 직·간접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처음부터 준법을 하는 변호사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커리어 여정이 그러하듯이 세금이나 지적재산권같은 특수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기회를 준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다 보니 준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전에 간략하게 공유한 바와 같이 나 또한 미국 법률 회사에서 약 8~9년간 한국 고객을 대변하여 일하다가 회사의 고문 변호사(인하우스 카운슬)가 되고 싶어서 계속 알아보다 보니 입사하게 된 회사에서 자금세탁방지법에 문제가 있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고문 변호사로서 처음으로 컴플라이언스에 입문하게 되었다.

 

컴플라이언스와 연결된 나의 주된 업무는 한마디로 감독기관 대응이었다. 미국의 금융 기관들은 정기적으로 연방 및 각 주의 감독기관으로부터 일종의 감사를 받는데, 그 취지는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금융 기관의 다양한 준법 상황과 금융 기관의 신뢰성 및 안정성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금세탁방지법의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거나 사이버 공격으로부터의 보안 여부, 또는 금융 기관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심지어 사회에 얼마만큼 공헌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대대적인 감사가 실시된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그와 같은 정기적인 감사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독기관에서 때때로 요청할 수 있는 모든 요구사항들을 취합하여 답변하고, 자금세탁방지법 관련하여 분기별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을 작성하고 제출함으로써, 과태료를 포함한 추가적인 징계를 받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용되었을 당시, 회사는 이미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으로 감독기관으로부터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강화하라는 일종의 제재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감독기관으로부터 받은 제재 명령(Order)은 공개 정보이다). 처음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 자신을 소개할 겸 감독기관에게 우리가 최대한 협조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팅을 주선하였는데, 내 말 한마디로 과태료를 부과받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때문에 아직도 그때의 떨림과 긴장이 기억난다. (미국 감독기관에서 부과하는 과태료는 한 조직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 중에 하나로써 전망대는 102층에 위치하여 있다. 관광객들이 옥상에서 뷰를 보기 위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그 건물에서 일하는 오피스로 갈 수 있는 오피스 엘리베이터는 따로 위치하여 있다.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금융 감독기관은 32번가 한인타운 근처에 위치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건물에 상주하여 있었는데, 난 그때까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건물이 오피스 건물인 줄조차 몰랐다. 감독기관의 오피스에 들어서자마자 몇몇 역대 미국 대통령의 사진들과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금속탐지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방정부 기관인만큼 추가 검문을 해야 했다.

 

정확한 층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꽤 높이 올라온 것 같아서 뷰를 볼 수 있는지 들어가자마자 주위를 두리번 살펴보았지만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맨해튼 한 중심, 그것도 꽤 고층에 이 정도의 오피스에 상주하기 위해서는 월세가 엄청날 것 같았다. 아마도 월세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커버하겠지만 금융 기관으로부터 거둬들이는 과태료도 한몫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과태료에 우리 회사도 한몫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뉴욕 central park

 

그날 미팅은 나 자신과 임원진들을 소개하고자 마련된 자리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감독기관 직원 중 한 명이 한 시간이 넘게 회사의 준법 프로그램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들은 동행한 컴플라이언스 오피서의 임기응변으로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날 대답한 모든 답변들을 다음 검사 때 직접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미팅에 들어갈 때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로 돌아왔던 기억이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다. 그 이후에도 감독기관의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몇 번 더 방문해야 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관광객으로서 추억과 낭만의 장소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내게는 스트레스의 원천지로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당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일하며 보람을 크게 느끼기도 했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나름대로 최대한 분기별로 정리된 정보를 책자로 제본까지 만들어가며 깔끔하고 성실하게 보고한 결과 감독기관에게 우리가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최소한 내가 그 회사에 근무한 그 기간 동안은 과태료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미국에서 직접 감독기관을 대응하는 준법 변호사로 몇 년간 일을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은 성실성정리의 중요성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리고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성실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하여 상대방이 가장 알아듣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줄 수 있으면, 상대방이 설사 어떠한 의구심이 있을지라도 그 정리된 자료와 글에서 발산되는 진정성과 노력, 성실한 태도만으로 어느 정도 설득이 가능한 것 같다. 그게 설사 수백억 원의 벌금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연방 금융 감독기관일지라도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러한 성실성과 정리하는 능력은 직장 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직장 상사에게 자신이 가진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적극적으로 보고할 수 있으면, 나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성취한 업적보다도 훨씬 더 인정받고 신임을 얻게 된다. 문서와 정보를 정리하는 모습 하나만 봐도 같이 일하는 동료나 부하 직원이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이메일 몇 개만 봐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준법 변호사로서의 삶은 다이내믹할 수 있다. 그 단계에까지 안 오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직접 감독기관을 만나야 할 수도 있고 본인의 말 한마디에 의해 회사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을 정도로 리스크가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느끼는 보람도 크다. 컴플라이언스만큼 자신의 일이 회사 전체에 눈에 보이는 영향을 주는 포지션은 많지 않다. 거의 모든 부서와 소통을 하면서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하고, 임원진과 그리고 때로는 이사회에 직접적으로 쓴소리를 해가며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줘야 할 수도 있다. 엄격하면서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친절해야 하고, 평소에 하는 모든 업무들은 감독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성실함정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내가 준법 변호사가 된 길은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나름대로 특별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방법은 그렇게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필요한 거 같지는 않다. 성실하게 상대방을 대하고 상대방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주는 것이 여느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아마 이런 면에서 100살이 넘은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께서도 인격의 핵심은 성실성이라고 하시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성실성을 강조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Ep 6.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