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1. 16:00ㆍ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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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4.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한국으로 귀국한 지 거의 3년이 되어간다. 코로나 시기, 현 직장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한국에 간신히 귀국하였다. 처음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해도 이렇게 오랜 세월 후에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갈 때는 그냥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유학생의 신분으로 떠났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중년의 나이에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3년간 살면서 미국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한국에 왜 돌아왔냐는 것이다. 그냥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미국에서의 삶이 어떤지를 알아보고 싶어 하는 듯하다. 질문의 세부적인 의도는 다양하겠지만, 대화를 나눠 보면 한국에서 평생 산 사람들에게는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이 막연한 로망이자 꿈인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자녀 교육 때문에 진지하게 외국으로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거나, 아니면 때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에서 벗어나서 좀 여유 있게 살아 보고 싶은 경우 등이 많은 것 같다.
재밌는 사실은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종종 한국을 방문해서 종종 식사를 같이하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있다면 오히려 한국으로 귀국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미국 속담 중에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항상 다른 쪽 풀이 내 쪽 풀보다 푸르르다.”라는 의미로 한국 속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와 일맥상통하다. 꼭 미국에서의 삶이나 한국에서의 삶이 부러워서라기보다는, 어쩌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어려움들이 다른 곳에는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나 본인들이 현재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지루함 또는 답답함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자주 왜 한국으로 돌아왔냐는 질문을 받고 더 나아가 여러 미국에서 알던 지인들로부터는 한국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다 보니 그때마다 내가 한 답변을 곱씹어보게 된다. 한 번은 미국에서는 총기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크다는 식으로 답변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자리에는 아직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너무 배려 없게 답한 것 같아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때는 그냥 너무 심각하게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에는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맛있는 거 먹으려고 귀국했다고 답변을 한 적도 있는데, 질문의 취지에 비해 너무 가볍게 답한 것 같아서 약간 후회를 한 적도 있다. 사실 두 답변 다 거짓말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총기 소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불안이 만연하게 퍼져 있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는 것도 아무래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한동안 나 스스로도 내가 왜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지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서 부분적인 답변을 준 것 같다.
내가 한국에 귀국하기로 결정을 한 계기는 사실 미국에서의 삶에 어떤 부족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는 했지만, 뉴욕 맨해튼에 사는 것도 재밌었고, 종종 만나는 지인들도 꽤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월스트리트에서 준법 변호사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귀국을 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에는 내가 애틋하게 좋아하는 것 또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 장소, 공간, 음식, 문화 등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일례로, 미국은 워낙 영토가 넓어 지인들이 있어도 직장이나 가족의 이유로 다른 주로 이사를 가고 나면 오랜 기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뭐 한국도 워낙 바쁘게 살다 보면 서로 못 만나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은 비교적 땅덩어리가 작다 보니 사람이 번잡한 장소에서 우연찮게 과거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날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 길거리나 직장 근처에서 연락이 끊겼던 과거의 지인들을 여럿 만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직접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다. 워낙 오래 해외에 살다 보니 외국 음식을 매우 좋아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설렁탕이나 짜장면이 종종 당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또한 한국에서 내가 유년 시절을 뛰어놀며 보낸 공원, 초등학교 등의 장소를 지나가면 고향같이 애틋하게 느껴지고 너무 좋다. 반면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한국의 그 어느 공원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광대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틋함이 부족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가 있으며 크나큰 축복이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에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뿌리를 내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사이에서,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가며 그 안에 둘러싸여 살아갈 수 있다. 다만, 자신이 자라난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들과 추억들이 저절로 축적이 되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고국이 아닌 외국에서 그러한 환경을 구축을 하는 것은 조금 더 어렵고 인위적인 노력이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생겼다고 해서,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잠시나마 잊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간혹 아는 분들이 외국에서 살고 싶다거나 아니면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싶다고 할 때에는 그러한 조언을 드린다. 당분간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조금 묻어 두고 살아가는 것이 조금 힘들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그 그리움은 커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결국은 그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귀국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Ep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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