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p 8. 한국 컴플라이언스 오피서가 체감한 국뽕 이야기 by 카일

2025. 10. 29. 09:09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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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8. 한국 컴플라이언스 오피서가 체감한 국뽕 이야기

 

 

현 직장에서 컴플라이언스 오피서(준법지원인)로 일하면서 느끼는 컴플라이언스의 가장 재밌는 부분은 이 일이 아니면 평생 가 보지 않을 전 세계의 곳곳을 누비게 된다는 점이다.

 

컴플라이언스를 하는 사람이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출장을 다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인도 및 여러 동남아 국가에 설립된 법인들이 있고, 특히 인도, 필리핀 등 인력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면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국가에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꽤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이 많은 인력들에게 컴플라이언스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 있는 컴플라이언스 오피서들이 모여서 1년에 한 두어 번 정도 출장을 가는데, 한국에서는 직항으로는 갈 수 없는 비교적 시골 도시들까지도 종종 가게 된다. 

이번 년에는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로부터 비행기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나가(Naga)’라는 작은 도시에 자원해서 혼자 방문하게 되었다.

 

얼마나 작은 도시냐 하면 비행기가 착륙하면 활주로에서 내려서 공항 입구까지 걸어 들어가고, 트럭으로 수하물을 싣고 오면 승객들이 알아서 하나씩 찾아가야 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인구는 약 65,000명으로 마닐라로 여행을 하는 승객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 간혹 비행기 예약이 취소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마닐라로 가기로 한 날 비행기가 취소되어 하루를 더 숙박해야 했다.

 

3일에 걸쳐 수백 명이 넘는 직원들을 상대로 혼자서 몇 세션으로 나눠서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매 세션마다 달라진 한국의 위상과 한국에 대한 대외적인 인식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된다.

 

필리핀 나가의 위치(좌)와 공항(우). 공항은 워낙 작아서 영화에서처럼 활주로에서 걸어서 공항 건물까지 걸어가야 한다

 

 

일례로, 컴플라이언스라는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딱딱한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최대한 분위기를 완화하고 재밌게 진행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중 하나는 출장 간 나라의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한국 콘텐츠의 순위를 찾아보는 것이다.

 

확인 후 한국 콘텐츠가 인기가 있는 나라에서는 나 자신을 K-pop, K-drama의 나라인 한국에서 온 컴플라이언스 오피서라고 소개하고 교육을 시작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직원들이 살짝 웃으며 분위기가 완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 다음 질문으로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지, <오징어게임>,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쇼를 봤는지를 물어보기만 해도 “Yes!”라고 크게 답변이 돌아오기 때문에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세션을 진행하게 된다. 이번에 방문한 나가와 같은 작은 도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세션이 끝나고 나면 간혹 나와 사진을 찍기를 원하는 직원들도 있었고, 회사 내 채팅 메시지로 별도로 연락해서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요구해서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 종종 연락이 오는 직원들도 있다.

 

이번 방문에는 세션이 시작하기 전에 내가 머물 회의실과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준 젊은 현지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와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어봐서 허락했더니 자기 아내에게 나와 찍은 사진을 보내면서 “You are my first Korean friend.(너는 나의 첫 번째 한국 친구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위상이 정말 달라졌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다. 출장을 가서 평소 알고 지내던 APAC(동남아, 호주, 뉴질랜드, 한중일을 포함한 Asia-Pacific Region) 소속의 외국인 직장 동료들을 만나게 되면 나라에 상관없이 종종 한국 물건들을 구입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특히 딸을 가진 직원들이 아주 구체적인 화장품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사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 연예인이 표지로 나와 있는 잡지 등 다양한 한국 제품들을 부탁한다.

 

 

 

한 번은 어느 드라마에서 봤다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놀이인 제기차기를 사 와달라고 영어로 ‘jegichagi’를 부탁을 해서, 웃으면서 아마 원하는 것은 ‘jegichagi’가 아닌 ‘jegi’일 거라고, ‘차기의 의미를 설명해 주면서 제기를 사다 준 적도 있었다. 막상 제기를 사려고 돌아다녀 보니, 내가 어릴 때 제기와 같은 물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던 문방구들이 워낙 많이 사라지기도 했고, 몇 군데 들려서 어렵게 구한 제기의 포장지에 “Made in China”라고 적혀 있어서 열심히 스티커를 제거해서 가져갔던 웃픈 일도 있다.

 

그러한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에서 인용하는,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한없이 가지고 싶어 하셨던 높은 문화의 힘을 이미 한국은 가지게 된 것 같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생전에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한국이 그 문화의 힘을 이루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게 된 첫 번째 세대가 아닌가 싶다.

 

한없이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라는 주제를 한국에서 온 이름 모를 낯선 외국인이 교육하는데도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할 수 있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직장동료들과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문화가 이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고 난 그 문화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와 같이 소위 우리나라에 대한 국뽕과 함께 실감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버블(거품) 속에 살고 있는가이다. 출장을 가서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과 사무실을 조금만 벗어나면 매우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제대로 된 건물은 띄엄띄엄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건물과 같은 곳에서 음식과 물건을 팔며 생활하고, 소와 개들이 즐비하여 더없이 혼잡한 도로를 지나가기도 하고, 어느 나라에나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은 많겠지만 때론 7~8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저녁 시간이 되면 길거리에 혼자 또는 어른과 나타나 앉아 있는 모습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인도에만 가도 국제 기업들이 즐비한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호텔이나 회사 정수기에 있는 물 외에는 마시지 말라’, ‘밤에 호텔 밖을 나가지 말라’, ‘길거리에 즐비한 릭샤를 탈 때는 꼭 현지인과 같이 타라는 등의 다양한 경고 사항을 들을 때마다 한국이 얼마나 안전하고 발전하였는지를 새삼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몇 년 전에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부터 10년도 넘게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통해 후원을 해 오던 태국 어린이가 자라서 (현재 교습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다), 방콕을 방문한 김에 내가 머무는 호텔에서 처음으로 감격스러운 만남의 순간을 가졌는데, 이 친구는 태국의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 태국의 수도인 방콕을 평생 처음 방문해 보았고 심지어 평생 방문할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고 하며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있다.

 

인도와 필리핀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릭샤(좌) 후원하던 어린이(파란색 줄무늬)와 방콕에서 찍은 사진 (우)

 

 

이러한 출장 일정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면 뿌듯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렇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할 기회가 있고,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기회가 많은 곳에서 자녀를 키울 수 있고, 그리고 내가 꿈꾸던 국제 변호사로서의 꿈을 어느 정도는 이뤘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뿌듯함 등이 다 같이 몰려온다.

 

우리나라에도 풀어야 할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누구나 수많은 고민이 있겠지만, 때로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갖고 싶은 것보다는 갖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루고 싶은 것보다는 이룬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해 좀 더 여유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제는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Ep 9.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