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Ep 1.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by 권현진

2024. 4. 3. 11:47캐나다 출신 외국변호사의 한국적응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 Ep 1.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평화롭지만 무료했고, 무던했지만 외로웠다. 어떻게 이런 가능했을까?

매일 같이 평범하고 순조로운 일상은 축복이었지만, 내면에는 많은 갈등이 있었다

 

서른이 되던 해인 2022, 그때의 혼란은 이루 말할 없었다. 매일 차로 1시간 이상 왕복하며 출퇴근을 하면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끝없고 아름다운 대자연에 위로를 받으며 감사하면서도,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갔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국어를 구사할 있는, 한국계로서는 개체수가 희박해서 희소성이 있었던 '소송' 변호사였다.

 

세상은 평온한 듯해도 나는 언제나 갈등의 한가운데 있었던 같다. 이혼, 민사, 형사, 회사법, 부동산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입술은 타고 목은 바싹 말랐다. 상대 변호사, 검사, 클라이언트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때론 사무실 문을 닫고 소리치거나 울고 싶은 날도 많았다. 나는 주말에도 일에 치여 살았고 1년에 겨우 열흘 남짓한 휴가만이 있었다. 감정은 점점 메말라갔다. 열심히 바쁘게 달려왔다고 생각했고, 커리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결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순간,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평생 일에 자신을 바친 50 후반의 여성 변호사가 눈꼬리가 올라간 히스테릭한 모습으로 "나는 일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왠지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는 같아 혼란스러웠고,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캐나다를 떠나고 싶었다.

 

아래는 캐나다의 대자연을 가장 담아냈다고 생각하는 조프리 호수(joffrey lake) 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국행을 결심한 ,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조프리 호수(joffrey lake)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6학년 ,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언니와 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 밴쿠버로 2년간의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학원이 없는 그곳을 천국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2년의 유학은 20년의 이민 대장정이 되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호주의 날씨가 사계절 내내 여름같이 따뜻하다는 말에 매료되어 호주 생활을 결심했다. 그렇게 언니가 호주 의대를 따라 시드니 법대에 입학했다. 호주에서 졸업 변호사 자격을 얻고 꿈에 그리던 로펌에 입사할 기회를 가졌으나, 호주 생활 3년간 동양인으로서 겪은 백호주의와 인종차별로 인해 변호사로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껴 캐나다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하필 코로나에 걸린 상태에서 (bar) 시험을 치러야 했고, 최악의 컨디션과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성대를 짜내며 법정 변호(advocacy) 구술(oral) 시험을 치렀다. 동정표를 얻었던 것일까? 다행히 최악의 건강 상태에서도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있었다.

 

변호사 일이 주는 보람은 대단했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정도였다. 일은 적성에 맞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토록 어렵게 취득한 캐나다 변호사 자격증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이 쉬웠던 이유는, 아마도 모국인 한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항상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로스쿨 시절 서울대학교 법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경험한 재미있는 한국 문화와 언제든지 원하는 (주로 음식) 24시간 구할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외국에서 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축복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국으로 돌아와서 20 캐나다에서 윤선생 영어로 다져진 기초적인 ABCD 실력으로 맨땅에 헤딩했던 그때처럼, 새로운 곳에서의 삶으로 향해(heading) 보기로 했다.

 

우연한 기회로 서울에 있는 외국계 제약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았고, 20년간의 해외 생활을 2개월 만에 급히 정리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람들이 야반도주 아니냐고 정도로 바쁘게 짐을 쌌다.

 

그리고 2023 8월의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날 한국에 도착했을 , 숨이 막힐 듯한 습도와 더위에 매우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마치 여행을 같은 기분에 설레었다.

 

순간 갑자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Carpe diem.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지금을 살자, 현재를 즐기자, 삶을 특별하게 만들자.")

 

20년이란 세월이 지나 모국이 낯설게 느껴지는 지금, 한국에서 삶의 (chapter) 열어야 하는 자신에게 해주는 격려의 말인 듯 싶다.

 

 

EP.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