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Ep 2. 문화적 교차점에서 찾은 나의 정체성 by 권현진

2024. 6. 26. 11:08캐나다 출신 외국변호사의 한국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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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 Ep 2. 문화적 교차점에서 찾은 나의 정체성

 

캐나다와 한국, 나라의 문화가 나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 캐나다의 한적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의 번화한 서울로 돌아온 나는 문화적 차이의 앞에서 때때로 혼란을 느꼈고, 이는 법적인 측면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문화적이고 법적인 차이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많은 자유와 독립심을 주었다. 나라에서 살아 보니 곳의 문화와 법은 차이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강조되며, 사회 전반에 걸쳐 개방적인 태도가 두드러지는 반면, 한국은 공동체적 가치와 집단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공간과 사생활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한국에서는 직장 내에서 동료와의 관계가 훨씬 개인적인 측면까지 포함될 때가 많은 같다. 이러한 차이는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도 느낄 있었는데, 캐나다에서는 자주 사용하던 “Sorry.” “Thank you.” 같은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인사말이 한국에서는 상황에 따라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캐나다에 비해 스스럼없이 동료들과 소소한 삶의 일상을 나누는 재미도 느끼곤 한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 나는 적잖은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 있을 때는 동료들의 나이를 궁금해하거나 물어본 적이 없었다. 존댓말이 없는 캐나다 문화에서는 나이로 상하관계를 정리할 필요도 없고,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보스도, 심지어 시어머니도 대부분 이름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굿모닝, 토마스." 같은 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장님 (또는 시어머니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면 큰일 일이다. 한국은 과장님, 부장님, 팀장님 성함 뒤에 호칭을 불러 주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다. 한국식 이름과 호칭은 아직도 나에게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다.

 

캐나다에서는 점심시간에 대부분 각자 원하는 시간에 따로 먹는다. 친한 동료라면 같이 점심을 먹자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소중한(?) 점심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하는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있다. 반면 한국의 직장은 같이 먹는 것이 정이고 사회생활의 일부로 여겨진다. 때론 먹고 싶은 음식을 포기하고 다수결의 의견을 따라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상상도 없다. 회식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는 외국계여서 그런지 회식 비용이 거의 나오지 않아 회식을 하지 못하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회식도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여겨진다. 캐나다에서는 '회식'보다는 동료가 입사하거나 퇴사할 인사하는 의미로, 최대한 근무 시간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가끔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한국 직장에서 첫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 것도 신기했다. 이러한 차이는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적응하며 한국은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고, 나이로 서열을 정리하는 것이 사회적 관습(?)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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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느낀 문화적 차이는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면, 캐나다에서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같은 행동을 했을 , 뒷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오해하거나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작은 일상의 차이가 나에게는 문화적 충돌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 차이는 법의 영역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내가 캐나다에서 주로 다뤘던 분야인 이혼 통해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혼법으로 보는 나라의 문화 차이

 

한국에서는 이혼 유책주의에 따라,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없다. 유책 사유란 이혼을 초래한 배우자의 과실 또는 잘못을 말하며, 부정행위나 가정 폭력 등이 해당될 있다. 이는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결정에 있어 유책 배우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있다.

 

또한, 혼인 파탄의 사유가 외도와 같은 행위인 경우, 재산 분할과 별도로 배우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청구할 있다. 재산 분할은 유책행위에 의해 이혼에 이르게 된다면,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급부로서의 성질까지 포함하여 분할할 수도 있다.”라고 대법원이 판결한 있다(대법원 2005. 1. 28. 선고 200458963 판결).

 

그렇다면 캐나다는 어떨까?

 

캐나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노폴트 이혼(no-fault divorce, 유책 사유없이 합의하에 이혼하는 )' 가능하며, 유책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 이혼을 결정할 유책 사유가 사용될 있으나, 증빙의 어려움 때문에 이혼 사유로 1 이상의 별거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캐나다 법은 이미 충분히 복잡한 요소 (예를 들어, 양육권 ) 지니고 있는 이혼 소송의 특성상 재산 분할을 간소화하며, 개인의 과실보다는 실리적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낙인(stigma) 두려움을 넘어서, 캐나다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강하게 지지한다. 결혼 생활에서 외도가 있거나 개인이 혼인 중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경우 그것도 개인의 자유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간통법이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한때 외도를 형법으로 규제하던 한국의 사회적 인식과 비교할 , 캐나다는 한국보다 개인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관대하다고 있다.

 

나는 외도를 절대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수는 없으며, 결과만 놓고 보았을 , 유책 사유가 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주장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유책으로 인해 신뢰가 깨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나다 로펌에서 근무할 한국에서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던 클라이언트의 상담 의뢰를 받았다. 보통 나라에서 이미 소송을 진행한 경우, 다른 나라에서 소송을 제기하려면 기존 소송이 취하되거나 판결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분이 상담에 한국에서 진행 중이던 모든 소송 자료를 가져왔기에 한국의 이혼 소송장을 기회가 있었다. 내용은 KBS에서 이혼 위기를 맞는 부부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던 드라마 <사랑과 전쟁>보다 자극적이고 적나라했다. 영어로 하면 ‘digging up dirt’ . , 뒷조사를 통해 주로 개인의 과오를 들추는 내용이었다. 유책 사유가 중요한 한국법상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 사이에 있는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사자도 느꼈을지 모르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캐나다에서 이혼 소송을 다루다 보면, 사람들은 대체로 이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중점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과거 잘못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솔루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는 개인의 행복과 재출발을 응원하는 사회적 시선과 더불어 상대의 과오를 들추지 않고도 충분히 보호받을 있는 법적 체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

 

Covid-19 한창일  로펌의 이혼 상담이 2~3배로 급증했다.  그럴까?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와 비즈니스 셧다운으로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주말부부들이 사이가 좋다는 말은 아이러니하지만 웃픈 현실인  같다. 결혼은 서로 죽고  살고 헤어지기 싫어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함께 있을수록 싸움이  자주 발생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혼의 이유는 다양하다. 외도, 도박, 폭력(  가지는 절대로 용납될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외에도 대부분의 이혼은 사실상 성격 차이 때문이다. 사소한 싸움들이 쌓여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항아리에 금이 가게 된다.  사람이 같은 항아리를 들고 있을  한쪽이 신뢰를 깨뜨리면 항아리는 와장창 깨진다. 이미 깨진 항아리는 붙여 봐도 그저 깨진 항아리 뿐이다.

 

캐나다에서는 이혼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개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법적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이는 결혼이 개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임을 강조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결혼과 이혼이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한다. 이혼 절차가  복잡하고, 사회적 편견과 가족의 부담을 동반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과 갈등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적 가치와 집단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문화 사이에서 느낀 것은, 비록 법적 절차와 사회적 인식은 다르지만, 결혼의 핵심은 결국 신뢰에 있다는 점이다. 결혼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며, 결혼에 대한 다짐과 어느 문화권에서나 비슷할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어려움이 있을 함께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결혼도 유지되기 어렵다.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가족과 사회의 조화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혼을 통해 사람의 삶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신뢰는 토대가 된다. 행복한 결혼의 여부는 법적 절차나 사회적 시선이 아니라, 사람 간의 깊은 신뢰와 존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결혼의 본질이다.

 

결혼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을 (은유적으로, 사막을 지나, 다리를 건너, 폭풍우를 피해) 서로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며 굳건히 항아리를 놓치지 않고 함께 건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미혼인 나에게는 아직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혼 소송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너무 많은 알게 되어버린 같기도 하다. 한때는 죽고 살았던 저들이 남보다도 못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도 들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다짐을 얘기하자면, 결혼을 하게 된다면 문화의 장점을 살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결혼 생활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또한 간접적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가까운 사이일수록 많은 존중과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캐나다와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혼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변호사로서, 그리고 사람의 배우자로서 내가 있는 매우 중요한 일임을 느낀다. 나의 내면에 공존하는 문화적인 이질감을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웠고, 나라에서의 삶이 나를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있게 해주었다. 나는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할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 또는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고 포용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P.3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