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 변호사님, 거긴 좀 살만한가요? by 이현욱

2024. 5. 22. 11:07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1. 변호사님, 거긴 좀 살만한가요?

 

 

"변호사님, 거긴 좀 살만한가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동관 5층 복도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저와 비슷한 연차, 나이의 변호사였죠. 제가 다니던 회사 사건의 담당 변호사였습니다. 아마 사내변호사 생활이 어떠한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윤기가 흐르는 어두운 회색빛 슈트를 입고, 포인트인 명품 넥타이를 조여 매고, 한쪽 옆구리엔 두꺼운 사건에 기록을 움켜쥔 채였습니다. 그때 제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맨 위 단추도 제대로 여미지 않은 하늘색 반팔 셔츠를, 그것도 베이지색 치노팬츠 밖으로 꺼내 입었던 제 모습이, 그와 완벽하게 대비되었으리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법정이 아닌 오피스를 택했습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로펌에서 실무 수습을 했고, 실무 수습을 마친 다음에도 얼마간은 출정을 했습니다. 그즈음 아이가 태어났는데, 가족에게는 변호사보다는 아빠 그리고 남편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변호사 업무는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습니다.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 책 속에서 갑을병정무기로 등장하던 인물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분쟁을 갖고 찾아옵니다. 갑이나 을이 아닌 김 아무개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들고서. 너무도 생생한 현실감에 놀랐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는 다방면에서 밀려오는 압박감에 중심을 잡지 못하였는데, 결국 아빠 그리고 남편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으므로, 가족을 돌보기 수월한 환경에서 일할만한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경험 부족이 걱정이긴 했지만, 자유롭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개업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적당한 개업지를 찾는 중 우연찮게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의 공공기관에서 사내변호사를 뽑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그곳에서 개업 전까지 시간과 돈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본심을 교묘하게 숨기는 변호사 고유의 능력을 발휘하여 어찌어찌 사내변호사가 되었고, 지금까지 변호사인 회사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 생활이 저와 꽤 잘 맞았거든요.

 

회사 생활 초반, 가슴 한쪽에는 언젠가 로펌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익힌 능력이 밖에서도 통할는지가 걱정이었습니다. 이런 불안감을 녹여 저를 오피스에 남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동료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변호사라는 직업적 특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회사 동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변호사인 제 의견을 존중해 주며, 권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저도 물밑에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하여 성과를 만들어 내고,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2년 정도 근무하였을 즈음 회사를 떠나야 할 외생 변수가 발생했고, 저는 다시 한번 기로에 섰습니다. 사실 그 시기에 괜찮은 수준의 연봉을 제안한 로펌이 있었는데, 면접까지 보고 와서는 그냥 거절을 했습니다. 잘 꾸며진 변호사실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 하나가 무척 외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깨달았죠. 저는 어디에서 일하느냐 보다, 누구와 일하느냐가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의 깨달음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가,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숙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며 일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제 로펌이냐 오피스냐를 분리하여 커리어를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앞선 고민에 맞는 진정성 있는 길인지만을 살핍니다. 그리고 그 길에 좋은 동료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게 제가 법정보다 오피스를 택한 이유입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의 환경이나 업무의 내용,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저와 결이 잘 맞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눈을 감아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고스란히 담고 텁텁한 냄새를 풍기는 법원 복도에서, 멋쟁이 변호사와 방금 끝난 재판에 대하여 간단히 의견을 나눕니다. 이윽고 멋쟁이 변호사는 걸음을 옮깁니다. 이후에는 지방에 미팅이 있어, 운전기사가 기다리는 검은색 법인 차량으로 향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가만히 있다가 저는 조금 전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려 합니다.

 

, 여기도 살만합니다.”

 

 

Ep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