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커 가는 엄마+변호사 - EP4. 너를 통해 배우는 세상 by 최진영

2025. 3. 26. 16:21딸과 함께 커 가는 엄마 + 변호사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딸과 함께 커 가는 엄마+변호사 

- EP4. 너를 통해 배우는 세상

 

 

“아지야~”

 

이제 제법 수다쟁이가 된 우리 슬이가 아침부터 자신의 애착 인형을 찾는다. 강아지에서 강을 빼서 ’아지’라고 이름 붙인 강아지 인형은 현재 슬이의 애착인형이다. 신생아 때부터 함께 수유도 하고, 잠도 자던 ‘아지’는 슬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나 다름없다.

 

언제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다닐까 했었는데, 이젠 제법 본인의 요구도 이야기하고, 사물들의 명칭을 꽤 정확하게 불러주며 엄마, 아빠의 이름도 서툰 발음으로 잘 이야기한다. 덕분에 요즘에는 슬이와의 대화를 통해 느끼는 것이 많다.

 

 

평소 슬이가 하원하고 나면, 바로 밥솥에 밥을 안치고 그동안 빨리 반찬을 준비한다. 그러고 나면, 슬이에게 밥을 주면서 맛있을 때 먹으란 뜻으로 “얼른 먹자.”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

 

엊그제, 새로 안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함께 미역국을 주며 나도 한술 뜨는데, 슬이가 “맛있게 먹자, 맛있게 먹어.”이러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도 한술 뜨더니, “맛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는 데, 너무 뭉클했다.

 

일단, 내가 차려준 밥상이 맛있다는 것도 감동이었지만, 내가 슬이에게 해 준 말은 “얼른 먹자.”였는데, 슬이는 내게 “맛있게 먹어.”라고 해주는 것이 가장 큰 감동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상냥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슬이의 상냥한 말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퇴근하고 지쳐서 돌아온 남편에게 밥상을 차려줄 때, 나도 모르게 빨리, 얼른 먹으란 식의 눈치를 준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슬이가 보는 동화책, 어린이집에서 받아 오는 선물과 소품들에 써 있는 말이나 슬이가 선생님,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참 따뜻하고 밝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비록 서툰 발음이긴 하지만, 상냥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그런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태도는 상대에게 너그러움을 가지게끔 하는 것 같다.

 

 

 

슬이와 함께 다니면서 느낀 것 중 또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기에게 참 우호적(?)이란 사실이다. 출산율 저조로 인해 아무래도 아기를 보기 힘든 것도 있겠지만, 슬이를 비롯해서 아기들을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 말투를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없이 다정하다. 처음 본 사이라 할지라도, 호주머니에 있는 사탕, 과자를 주섬주섬 찾아 주는 분들도 있었다.

 

요즘같이 바람이 차가운 날, 어린이집 등원 버스를 집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 보면, 1분도 10분처럼 느껴지는데, 카페 직원분이 우리에게 안 사 먹어도 되니, 아기와 들어와서 버스를 기다리라며 호의를 베풀어 주시기도 했다. (물론, 빵순이 슬이와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그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자주 사 먹긴 했지만^^;;)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계산만 하던 MZ세대 집 앞 편의점 청년도 슬이가 편의점에서 사탕 껍질을 혼자서 열심히 뜯다가 땅에 떨어뜨리니 말없이 얼른 새것으로 바꿔주었다. 그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내가 다 놀라기도 했다.

 

 원고 또는 피고의 한쪽 입장을 대리하며 냉철하게 사건을 해결해야 되는 직업을 가진 내게, 슬이와 함께 다니는 세상은 너무도 따뜻하다. 슬이와 함께하는 생활 속에선 사람들이 그 누구의 편도 아니며 아기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준다. 그럴 땐, 소장 속 세계가 아닌 따뜻한 다큐멘터리 속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사람들의 호의와 따뜻한 배려를 경험하며 아기들은 좀 더 성숙해지고, 베풀 줄 아는 인격체로 조금씩 자라겠구나 싶다.

 

 나 또한 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격려를 받으면서 지금의 어른이 되었을 텐데,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 속 내 역할을 묵묵히 해야겠다. 또 누군가에게 좀 더 따뜻하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싶기도 하다.

 

 분명 내가 어른인데도, 신기하고 재미있게도, 29개월 우리 딸 슬이를 통해 매일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 아기가 경험하는 따뜻한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게 ‘상냥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Ep 5.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