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 살기 Ep 2. 워케이션 일정과 후기 by 고봉주

2024. 4. 17. 11:05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살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 살기

- Ep 2. 워케이션 일정과 후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뉴욕의 변화 없는 일상에 지친 저널리스트 주인공이 새 출발을 위해 1년간 여행을 떠나며 자아를 찾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초기 4개월은 이탈리아로 가서 먹고, 그 후 인도에서 기도하며 명상을 배운 뒤, 마지막으로 발리에 가는데 거기서 우연히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주인공 리즈의 상황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지만, 리즈의 1년 간의 여정은 매우 부럽다. 특히 이 영화를 보고 이탈리아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싶다는 리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들고 빠져들게 한다.

 

리즈처럼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생활인이고직업이 그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고뇌가 그저 팔자 좋은 자의 철없는 투정으로 보일 뿐 쉽게 공감을 하기는 어려운데,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실제 인물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모른 채 보았다. 영화라는 매체는 픽션이어도 현실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여행을 떠나는 설정이라면 주인공의 여건을 눈여겨보곤 한다. 비록 영화지만 주인공을 무작정 여행 보낼 수는 없는 법이니, 직업은 무엇이고 생계는 어떤 식으로 처리했는지 최소한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장치를 찾아본다. 이 영화의 경우 주인공 리즈가 무려 1년이나 자아 찾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직업이 저널리스트라는 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실제로 원작을 쓴 작가의 직업 역시 저널리스트이다).

 

 

 

개업 변호사도 워케이션을 명분으로 떠날 수 있느냐?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 리즈가 저널리스트로서 글을 쓰는 것처럼, 변호사도 글을 쓴다. 물론 둘의 글쓰기는 성격이 전혀 다르고 변호사의 글쓰기는 단독으로 의미를 가진다기 보다는 다른 목적(소송, 자문, 계약서 등)을 위한 글쓰기 성격이 강하지만 독립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업무의 주요 내용 중 하나라는 점에서 글을 쓰는 직업과 업무 환경이 유사한 점이 있다. 그래서 워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그 기간 동안 해야 할 업무를 글 쓰는 작업 위주로 잡아야 한다. 변호사의 글쓰기에는 위에서 말한 예시 외에도 출판 원고 작업 등 각자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넓힐 수 있는데, 강의를 위한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나의 경우에는 대학교에서 겸임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 교안을 작성하는 업무가 매 학기 시작 전에 마쳐야 하는 중요한 일정이다.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한 학기 강의 교안을 작성하는 기간이 대략 얼마나 걸릴지 예상해서 워케이션 기간 동안 그 업무를 우선순위에 두고 일정을 짰다. 이렇게 1주일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독립적인 글쓰기 작업이 있다면 워케이션으로 적합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워케이션 동안 변호사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소송은 할 수 없는 것인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소송 업무는 크게 보면, ‘서면 작업법정 출석으로 나눌 수 있고, 서면 작업을 위해서는 의뢰인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소송 업무 중법정 출석은 재판 일정을 피해 워케이션 기간을 잡아서 해결했다면, 남은 것은서면 작업이다.

서면 작업은 일반적으로 재판과 다음 재판 일정 사이에 마무리를 해서 제출을 하고, 매 재판마다 그 전에 소송 서면을 제출한다(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서면의 제출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송 업무 중 서면 작업도 결국 글쓰기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장소적 제약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소송 서면은 사무실 외의 곳에서 작성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소송 서면도 다른 글쓰기처럼 노트북 하나만 놓고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작성할 수도 있으나, 소송 서면의 성격, 난이도 등에 따라 법률서적 등을 참고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판례, 논문, 책 등 웬만한 것은 전부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것이 더 편리해졌지만 사람에 따라서 종이책이 더 편한 사람도 있고 인터넷에선 찾을 수 없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료(, 기록 등)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소송 서면은 그 특성상 소송 기록 파일도 같이 봐야 하는 등 모니터에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창을 띄워 놓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휴대용 사이즈의 노트북 화면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 놓고 작업을 하는 것은 효율도 떨어지고 쉽지 않다.

그래서 소송 서면의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급적 워케이션을 떠나기 전에 워케이션이 끝난 후 최소한 2주 내에 있는 재판의 소송 서면만은 미리 작성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변호사의 업무에는 법률자문과 법률상담도 있다. 이것은 업무가 언제 발생할지 일정 자체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자문에 따라서는 미리 일정이 정해진 것도 있지만 대개 자문을 요청하는 상대방이 필요할 때마다 문의를 하기 때문에 그 일정이 매우 유동적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법률자문에 응해야 하는데, 이것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사무실에 있는 온갖 자료들을 참조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필요한 내용을 찾아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다면 법률자문은 장소를 불문하고 가능하다. 법률상담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상담은 그 특성상 대면을 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비를 해야 한다. 화상 상담이 대안이 되지만 의뢰인 중에는 화상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기존 의뢰인이 아니라 신규 의뢰인의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미리 안내해 놓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메일 상담, SNS를 활용한 메시지 상담, 전화 상담, 화상 상담만 가능하다는 식이다. 주의할 점은 전화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휴대폰을 로밍해야 하는데,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업무시간과 관련해서는 워케이션 장소가 영향을 미친다.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한국과 시차가 있는데 이것은 업무시간의 변동을 의미한다. 한국의 통상적인 업무시간인 평일 9-18시에 해당하는 시간에는 내가 어디에 있든 업무상 연락이 올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항상 연락이 될 수 있도록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여행의 의미를 너무 반감시킨다고 느낀다면, 미리 업무상 연락을 위한 시간을 안내해 놓고(: 전화 및 메시지는 월~ 9~14, 그 외에는 이메일) 사후에 확인해서 한 번에 회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의 경우에는 워케이션 동안 이메일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매우 잘 활용했고, 특히 이메일을 매우 요긴하게 이용하였다. 가급적 하루 중 일정한 시간대를 정해 놓고 일을 하였는데, 주로 오후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일을 했고, 강의 교안 작성, 신규 글쓰기 작업, 법률자문과 법률상담 작업을 계속했으며 신규 계약 체결도 진행했다.

 

워케이션이 끝나갈 즈음 여행지에서도 업무가 가능하다면 계속 기간을 늘려서 워케이션을 하는 것은 어떨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에 대한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영화 후반부에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나온다. 발리에서 찾은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일지와 관련해서, 상대방 남자가 주인공 리즈한테 하는 말이 있다. 영화속 대사의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이런 취지로 말한다. 상대방 남자 본인은 사업 때문에 발리에 있어야 하고 리즈는 일 때문에 뉴욕에 있어야 하지만, ‘떨어져 살면서 인생을 함께 하자고 말하는 대사가 그것이다(이게 가능한지 여부는 영화의 결말을 직접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왜 리즈가 일 때문에 뉴욕을 떠날 수 없는지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으나, 리즈의 모든 삶이 뉴욕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 자유로운 일정으로 워케이션을 떠난 리즈도 궁극에는 자신이 살던 곳, 자신의 생활 전선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자유로운 여건이라도 1년 이상 떠나 있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리즈처럼 일상의 변화를 위해서 떠나는 것은 매우 좋은 경험이자 전환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을 완전히 내려놓은 채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없으므로 현실적인 워케이션 일정을 각자한테 맞게 잘 계획해 보길 바라며 워케이션을 위한 준비 경험을 풀어 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워케이션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위주로 적어 보고자 한다.

 

 

Ep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