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 일하기 Ep 5. 개업변호사가 사건을 만날 때 by 고봉주

2024. 12. 18. 12:15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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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변호사의 영화처럼 살기

- Ep 5. 개업변호사가 사건을 만날 때

 

 

시리즈 <월랜더(Wallander)>는 영국의 BBC에서 시즌 4까지 방영된 영국 드라마로 범죄 수사물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을 알 수 있는데, 영국 방송에서 방영했고, 주인공을 포함한 배우들도 영국 배우고, 심지어 언어도 영어를 사용하는데, 배경은 온통 스웨덴이다. 그들은 스웨덴 국적을 가진 경찰이고 스웨덴에 살고 있으며 스웨덴 화폐인 ‘크로나’를 사용한다. 의아해서 찾아보니 월랜더 시리즈는 스웨덴 작가 헨닝 망켈이 쓴 추리소설 <쿠르트 발렌더>를 원작으로 하고, 영국에서 시리즈로 만들기 전에 스웨덴에서 먼저 방영된 매우 인기가 높은 드라마였다.

 

< 월랜더 포스터 이미지 bbc >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배경을 그대로 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마치 한국의 인기 드라마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하면서 일본어를 사용하면서도 배경과 국적, 화폐단위는 한국 돈이라는 설정이랄까. 특히 이 시리즈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 드라마인지 알 수 있는 점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도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정확하게는 원작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그래서 제목도 <영 월랜더>이고, 주인공 월랜더 형사의 젊은 시절을 다룬 것인데, 프리퀄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원작보다 앞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최근이라서 프리퀄이라는 컨셉과는 다소 모순되지만, 시대상을 반영하는 줄거리(범죄)를 내용으로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추측한다. 

 

여기서 내가 소개하는 작품은 영국 드라마 <월랜더>이고, 넷플릭스의 <영 월랜더>는 보지 않았다. <월랜더>는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북유럽 누아르, 북유럽 수사물의 대표작 등으로 수식되기도 하는데, 드라마를 보면 왜 북유럽 누아르라고 굳이 구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진지하고 건조한 분위기에 느리게 전개되는 속도감과 회차당 90분이라는 드라마치고 긴 러닝타임은 우리가 보다 쉽게 접하는 미드 수사물과 확연히 비교되는 특징이다. 스산한 느낌의 스웨덴(또는 북유럽)의 풍광은 이 드라마의 매력이자 압권 중 하나인데, 여기에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하는 주인공 커트 월랜더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아련한 정서를 더해준다.

 

<월랜더>는 범죄 수사물이므로 매 회차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피해자도 보통 두 명 이상인데 경찰인 월랜더가 이끄는 팀이 월랜더의 지휘하에 사건을 해결한다. 월랜더는 중년의 경찰로 미중년의 매력을 발산하면서, 한편으론 고뇌를 많이 한다. 그의 고뇌는 가족과 직업적 특성 등 여러 원인이 섞여 복잡한데 결국 직업적 특성이 고뇌의 근원으로 보인다. 범죄가 때와 장소를 가려서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월랜더는 가족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경우가 늘었다. 그게 사실상 이혼이라고 봐야 하는 별거 상태를 초래하고 또한 딸과의 관계에서도 불신을 키운다.

 

영드 월랜더 한 장면



그러면서 월랜더는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마다 성실하게 임하면서도 계속 고뇌를 하는데(이게 미드 수사물 속 주인공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그렇게 고민이 되고 그로 인해 삶이 괴로우면 경찰을 그만두면 되지 왜 저렇게 고뇌하는지 답답한 지점이 결국 온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재미있지만 솔직히 시즌이 거듭될수록 고뇌는 깊어지고 그만큼 재미는 줄어든다.

 

커트 월랜더의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적성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은데 변호사란 직업의 고뇌는 무엇인지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이건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고뇌의 종류가 나뉘는데, 현실적으로는 영업과 수임에 대한 고민, 즉 자신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영업이 맞지 않는다는 고민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근데 꼭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영업이 적성에 맞다고 말하는 사람은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직업이니까 그냥 하는 거다.

 

변호사 직업은 업무 측면에서 보면 특히 형사 사건에서 고민하는 일이 생긴다. 피고인을 변호해야 하는 경우에 피고인의 변소(주장)를 나도 믿지 못하겠는데 무죄를 주장해야 하거나 사건의 성격 자체가 성범죄 피고인을 변호해야 하는 경우처럼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는 진행 중인 성범죄 사건을 변호인으로서 인계받았던 경우에 사임한 앞의 변호사가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수용하는 게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강력 범죄의 범죄사실은 대개 매우 끔찍하지만 특히 성범죄 사건의 범죄사실은 사람에 따라서는 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범죄사실은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서 사건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매우 사소하고 구체적인 행위와 상황, 발언까지 적시되어 있는 범죄사실을 듣거나 읽고 있노라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올 때도 있다.

 

 

 

그리고 성범죄 사건이 주는 내적 갈등은 꼭 피고인을 변호할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건에 따라서는 피고인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대리하는 경우에도 갈등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가능하기에 ,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주장을 들어보면 과연 범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될지 모호한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건 자체에 대한 고민은 형사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도 생각보다 꽤 있다.

 

가치관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동성애 관련 형사 사건이었는데 피고인이 같은 성별을 가진 변호사를 이미 선임하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나한테 상담을 청한 것이다. 이때 그 피고인의 고민은 진행 중인 형사재판의 결과도 궁금해했지만, 그보다는 이미 선임한 변호사가 있는데도 굳이 다른 변호사한테 돈을 내고 상담을 한 내막은 기존 변호사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 지향성을 알고 있는 기존 변호사가 피고인한테 거리감을 두면서 어떤 불쾌한 감정을 내비쳤다는 것인데 피고인 입장에서는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괴로운데(그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변호인이 자신에 대해 어떤 선입관을 내비치는 것 같아서 믿고 의지해도 될지 고민이 되고 괴롭다는 것이었다.

 

고민을 들은 나는,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기존 변호인이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중간에 변호인을 교체하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클 수 있다고 조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상담을 마친 후, 변호사는 수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사건을 맡지 않는 게 피고인의 유무죄를 떠나서 피고인과의 신뢰 관계를 전제로 하는 위임 사무에 맞는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스웨덴 풍경

 

적성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라는 말은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능한 조언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직업을 선택할 때부터 자신의 적성을 파악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적성을 찾으면서 계속 이직을 하거나 직업을 바꾸는 게, 보다 현실에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지는 것은 어렵지만, 직업을 영위하면서 가치관에 따라 업무를 하는 것은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월랜더 형사의 직업적 고민은 마지막 시즌까지 가면 자의 반·타의 반 해결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길 추천한다. 스산한 분위기의 스웨덴 풍광이 진짜 끝내주는 드라마다.

 

 

Ep 6.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