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p 2. 내부 고객 만족시키기 참 어렵다. by 주현영

2024. 4. 24. 11:32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2 : 내부고객 만족시키기 참 어렵다.

 

 

변호사는 첫째도 영업, 둘째도 영업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내부 영업 중 회식에 관한 웃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변호사 조직이 아닌 다른 어떠한 조직이라도 사람 사이에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한 건 당연하다. 대부분의 일은 사람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 혼자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협력이 되지 않는다면 성과를 이룰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조직 내부 간의 협력 내지 조화가 중요하고, 그러한 수단의 하나로 회식, 저녁 술자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회식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도 지난 20년간 각종 회식에 참석하여 억지로 술도 먹어 보고, 2차 노래방도 가 보고 하면서 지냈다. 그러면서, 나는 늘 “왜 사람들은 일률적으로 행동해야 하지? 술을 천성적으로 못 마시는 사람도 있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왜 먹고 싶지 않은 술을, 심지어 술이 약한 사람들에게도 억지로 먹게 하지? 즐거워야 하는데 왜 억지로 못 마시는 술을 먹으면서 기분을 맞춰야 하지?”라는 내 나름의 불만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회식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존재하며, 이러한 분위기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못 마시는 소맥을 억지로 몇 잔씩 마셔야만 하는 그런 분위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창기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부터 내가 선배가 되어 회식 자리를 마련한다면 자유롭게 각자의 취향에 맞게 행동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나의 로망은 ‘기존 선배들과 다른 선배가 되자, 가급적 회식은 하지 말자. 하게 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하는 재미없는 회식이나 선배들만 이야기하는 회식은 하지 말자. 그냥 젊은 후배들이 원하는 회식을 하자.’였다. 물론 후배님들도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 어떠한 분위기를 좋아할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평상시에 후배들에게 밥을 자주 사지 않았다. 특히 저녁을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 후배들과 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식사 자리가 힘들고, 업무시간 외에 내 시간을 뺏기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상당하여 저녁시간을 직장 사람들과 보낸다는 것이 나에게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나는 후배들 생일에 조용히 카카오톡으로 기프티콘을 보내거나 책상 위에 소심하게 선물을 올려놓는 수준의 소극적인 선배이다.

 

그런데, 최근 후배들이 단시간에 엄청 고생한 사건이 있었다. 너무 미안한 나머지 밥이라도 한번 사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과감하게 후배들에게 저녁 자리를 제안했다. 저녁 회식은 나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고생한 후배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좋은 선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선배가 되어 보려고 저녁 자리를 제안한 것이었다.

 

드디어 나도 20년 차 선배로서 내가 원하는 저녁 회식을 주도해 볼 기회이니만큼 나의 로망을 실현해 보고자 하였다. 우선, 음식 선택권을 주기 위해 후배들에게 알아서 식당을 정하라고 했다. , 역시나 요즘 후배님들은 내 기준으로는 비싼 곳을 골랐다. 그건 좋다. 그런데, 사달은 메뉴를 고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코스를 주문하고 음료를 주문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원래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고 더구나 일주일 이상 감기약을 먹고 있어서 술 대신 차를 마시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구성원들에게 각자 원하는 음료를 고르라고 했다. 35살 막 초임 파트너가 된 남자 변호사는 치과 치료 중이라고 술을 안 먹는단다. 오케이. 좋아요. 저는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선배니까요. 나이 어린 20대 후반의 1년 차, 4년 차 두 여자 변호사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아무거나 먹어도 되냐고 묻고는 하이볼을 먹는단다. 오케이. 좋아요. 일률적인 맛인 소맥은 저도 싫어요. 두 명이 하이볼 종류를 엄청 고민하길래. 나는 나름 멋지게 뭘 고민해요. 종류별로 다 먹어봐요.”라고 쿨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문제의 2년 차 남자 변호사는 자기는 술을 안 먹고 나랑 똑같은 차를 마신단다. 오케이 좋아요. 나는 그 2년 차 남자 변호사가 원래 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몰랐고, 저녁 먹고 다시 들어가서 일해야 할 수도 있어 술을 안 먹나 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 로망은 회식에서 자유롭게 자기 취향껏 행동하는 것이고. 단지 나는 술을 안 먹고 싶은 상황이어서 안 먹는 거니 후배님들은 편안하게 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쭉 음식이 나오고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코스 거의 마지막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시간이 되었다. 고기가 살짝 느끼해서 고기를 먹으려니 술 한잔 당긴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감기가 몇 주째 떨어지지 않으니 술은 먹지 말아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무심코 앞자리에 앉은 문제의 2년 차 남자 변호사에게 고기 보니 술 당기죠?”라고 물어보았는데, 갑자기 그 남자 변호사가 사실은 자기는 처음부터 술을 먹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오 마이 갓. 아까는 먹기 싫다며. 너무 충격을 받아서 먹고 싶으면 먹지 왜 안 먹었냐고 물으니까. 선배인 내가 술을 안 시켜서 술을 시키기 뭐한 분위기였다나 뭐라나. , 나는 분명 마음껏 결정하라고 했고, 구성원 중 절반은 술을 시키기도 하였다

 

 

순간, 맛있는 거 마음껏 먹으라고 중국음식점에 데려와서 근데 나는 짜장면.”이라고 먼저 말한 꼰대와 내가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을 먹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냥 나는 술을 시키고 조금이라도 먹는 척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만약 내가 술을 시켰다면 술을 먹고 싶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먹는 사람이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은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두고두고 그 일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후배들이, 특히 소위 MZ세대라는 후배들이 정말 자유롭게 취향껏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런 선배이고 싶었다.

 

지금도 과연 내가 선배로서 술을 먹고 싶은 사람이 먹고 싶다고 할 수 있게 술을 마셨어야 하는가, 내 취향대로 행동했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답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정말 뭔가를 억지로 내가 하기도. 남들에게 억지로 하게 하기도 싫었다. 아니 몸에 좋은 것이라면 애교 섞인 강요 같은 것도 할 수는 있지만, 술은 정말 자기 취향이 아닌가

 

선배가 원하는 대로 끝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숙취를 억지로 이겨내면서 아침부터 출근해서 저는 술도 잘 마시고 정말 성실해요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정말 옛날 문화 아닌가. 자기가 소맥을 몇 잔이나 먹을 수 있는지 과시하는 것 또한 마초적이고 지양해야 할 문화 아니었던가. 처음 변호사를 시작하던 2003년 시절을 생각해 보면 선배 변호사님들과의 팀 회식 자리에서 아니면 고객과의 술자리에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먹고, 집에 가면서 토하고,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치면서 재미있지도 않은데 억지로 재미있어 보이는 연기를 하기도 하고, 다음 날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몸이 아파서 괴로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점점 연차가 올라가면서 적당히 술을 조절하는 요령을 배워 나름 대처를 하곤 했던 것 같으나, 여전히 자발적이지 않은 회식은 나에게 썩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2024년이 되어 내가 선배가 된 현시점에서 보니, 선배라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자리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저연차 시절 선배들의 눈치 때문에 억지로 술을 마시면서 선배님 너무 좋아요.”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 억지로 내 기분을 맞추지 말라고 자유롭게 하라고 했건만 조직 내 인간관계에서는 후배들이 여전히 선배인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후배들아!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너희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읽을 수는 없어.”라고 혼자 변명해본다. 뭔가 꼰대답지 않은 선배가 되려는 내 시도는 해프닝과 함께 어떠한 경우에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후배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취향대로 술을 마실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회식 자리를 만들어 나가겠다. 요즘은 나 자신도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경우를 줄여 나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너 왜 그래? 원래 안 먹었던가?”, “네가 안 마시면 재미가 없잖아.”라는 선배들의 소소한 저항에 부딪히기는 하나, 그래도 이제는 내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내 속도대로 술자리에 임하고자 한다.

 

로펌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론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하고, 주변 분위기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그런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여전히 회식을 중시하는 선배들도 존재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관계가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듯이 자기가 수용하기 힘든 수준까지 억지로 무엇인가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세상은 점차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Ep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