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 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Ep 1. 로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by 주현영

2024. 3. 27. 11:00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Intp변호사의 로펌에서 살아남기

- EP 1: 로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2003년에 변호사로 처음 업무를 시작하였으니 2024년이 시작되는 이 시점 나는 20년차 변호사이다. 사실 이 기간 동안 행정부 소속의 공정거래위원회 행정사무관과 사법부 소속인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한 기간이 있었기에 순수한 변호사 업무만 20년을 한 것은 아니다.

 

여하간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호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늘 변호사가 나와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변호사라는 업무에서 지속적인 탈출을 꾀하였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시 돌아왔다는 자조 섞인 푸념과 함께 소위 대형로펌이라고 불리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파트너 변호사로서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경력 때문에 내가 과연 로펌에서 살아남았다고 봐야 할지 나 스스로도 약간 의문이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로펌에 근무하고 있으므로 살아남은 것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나의 잦은 이직은 1970년대에 태어난 내 또래 변호사들에게는 다소 이례적인 것이어서 당시에는 엄청 특이한 애 취급을 받았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상황에 따른 이직이 빈번한 요즘 상황에서는 뭐 그리 특이한 경력은 아닌 것 같다. 너무 TMI적인 정보이긴 하나, 젊은 여자분들의 경우 육아와 일의 양립에 관해 관심이 많을 텐데, 나는 나이 40대 중후반이지만 결혼을 못한 여자 변호사이다. 그러나, 일하고 결혼했냐는 틀에 박힌 질문은 거부한다. 일에 몰두하다가 결혼을 못한 것은 아니고 그냥 결혼과 인연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시도때도 없는 탈출시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한평생 왜 이리 변호사가 안 맞지 라는 생각과 함께 살아왔다. 한동안 유행하였던 MBTI유형에 의하면 나는 3년 전만 하더라도 INTP가 주로 나왔는데, 최근에는 INFPINTP가 반반 정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위 두 가지 유형 모두 변호사가 안 맞는 직업이라고 나오는 걸 보면 역시나 내 기질상으로는 변호사가 안 맞나 보다.  

 

사실 시대가 변하면서 직업에 대하여 요구하는 역할, 직업에 어울리는 성격 또한 달라지는데, 변호사 또한 그 인원이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변호사로서 나를 알리고 선택 받기 위한 외적인 노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극I형이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고 나 자신을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런데 변호사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선택받기 위한 영업을 하여야 하고 그러한 역할은 연차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중요한 미덕이 되고 있다.

 

나는 소위 대형로펌 공정거래그룹의 여자 파트너 변호사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잘 못 마시는 영업에는 꽝인 스타일이다. 딱히 어떠한 신념이 있어서도 뜻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닌데 그저 게으르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에 약한 탓에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요즘은 나이 40 중후반의 아줌마로서, 한국의 아줌마 기질로 나아진 것이지 예전에는 고객과 단순히 밥 먹는 자리에서도 심하게 체할 정도였다. 그래도 변호사로서 살아남기 위하여 늘 뭔가 변화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근본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은 크게 변하지 못했다

 

그래 그런 내향적인 모습이 바로 나다. 얼마전에는 나름 마케팅 활동으로 일정 직업군의 임직원들에게 공정거래법 관련 강의를 한 후 같이 저녁식사를 하였다. 부끄러움을 많이 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기준으로는 엄청 사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분이 주변은 내가 알고 있는 변호사 중에 가장 쑥스러움이 많은 변호사인 것 같다는 아주 굴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저런 스타일이라면 뭔가 다른 재주가 있는 거 아닌가. 내가 겸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의 실망소리가 내 뒤에 들리는 것 같다. “, 뭐야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뭔가 배울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괜히 시간 낭비했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세상의 모든 변호사가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그렇지 않더라도 변호사로서 일할 수 있다고. 모두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변호사로서 보일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나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어서 사람 만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 저런 소극적인 스타일의 변호사도 있구나하는 것을, 너무 내향적이어서 사람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변호사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사는 언니, 누나가 있구나라는 용기를 주고자 한다. 어찌 보면 20년 동안 방황해 온 20년차 변호사의 자기 반성적 내지 자기 변명적인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늘 영업, 수임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영업에는 외부 고객영업 뿐만 아니라 조직 내 내부영업도 포함된다. 대형로펌과 같은 조직에서는 다른 팀으로부터의 업무협조도 중요하고, 심지어 같은 팀 내에서도 팀으로 들어오는 사건에 대한 배분권을 가진 팀장 혹은 동료, 내 업무를 같이 해 주는 후배변호사에 대한 영업도 아주 중요하다. 결국 변호사는 첫째도 영업, 둘째도 영업, 셋째도 영업이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늘 사람을 많이 접해야 한다. 모임을 많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외모도 태도도 호감형이어야 한다. 업무실력도 뛰어나야 한다. 팀플레이도 잘해야 한다. 외국고객에게 어필하려면 외국어도 잘해야 한다.” 고 이야기한다. 아 그러고 보면 변호사로서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이 시점에서 할 게 저렇게 많으니 나는 못하겠구나 하고 미리 포기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하기는 이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위에서 언급한 사항을 모두 갖추는 변호사는 없다.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은 이상적인 가상인물이지 현실의 인물이 아니다.

 

 

주변 선배, 동료 변호사들을 보면, 이와 같은 사항을 모두 갖춘 사람은 없지만, 이 중에 하나 이상은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하나의 장점만으로도 충분히 로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연재에서는 로펌 업무에서 중요한 내용을 하나하나 내 경험 혹은 옆의 사람 경험으로 풀어나가보고자 한다.     

 

다음 회에는 조직 내 내부영업 중 내 업무를 같이 해 주는 후배변호사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회식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향적인 스타일의 나로서는 외부 영업보다는 내부영업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어서, 내부영업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 중 SNL이 있는데, 유투브로 가끔 보다 보면 1980~90년대 직장생활과 현재의 직장생활을 비교해 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그런 에피소드를 참 좋아해서 자주 보는데, 내가 변호사로 처음 시작한 2003년과 현재 2024년을 생각해 보면, 20년의 차이가 존재하고, 20년이라고 하면 옛 어른들의 기준에서도 강산이 두 번 바뀌고 특히 요즘같이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엄청난 기간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기간 동안 나는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로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못 먹는 술도 깡으로 이겨내고, 부끄럽지만 미친척 다른 사람들과 억지로 어울렸다면 그게 더 신화적이고 입지전적인 인물의 태도일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그러했다면 현재보다 입지가 더욱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다소 옆으로 샌 감이 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로펌,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에서 적정하게 자신의 속도대로 해 나가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장기전이다. 단기적으로 자신의 속도와 수준을 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여도 결국 나와 맞지 않은 속도로는 장기적으로 버티기 어렵다. 계속하여 자기의 속도와 색깔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것, 나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의무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p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