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Ep 3. 컴플라이언스 변호사가 느끼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 by 카일

2024. 9. 4. 11:49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로글로그' 입니다.

미국 컴플라이언스 변호사의 한국 준법 이야기

- Ep 3. 컴플라이언스 변호사가 느끼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

 

코로나 시기에 TV에서 한 아이의 부모로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을 접했다. 12개월 정도 된 아기가 코로나로 인해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듯하여 응급실을 갔다가 병원 측의 투약 실수로 사망하고 만 것이다. 원래 아기에게는 에피네프린이라는 호흡 치료제를 아주 소량만 네뷸라이저를 통해서 투입해야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실수로 약물을 정맥을 통해 주사하였고 그 결과 아기에게 투입해야 하는 정량의 수십 배가 넘는 치사량을 투입하여 안타깝게도 아기가 숨진 것이다.

 

이러한 실수의 원인 중 하나는 네뷸라이저용 주사기와 정맥용 주사기를 구분하는 방법이 주사기 뚜껑의 유무뿐이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불행하게도 주사를 투입하기 바로 직전에 주사기의 뚜껑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였다.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난 이 사례가 컴플라이언스에서 말하는 내부 통제의 최악의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부 통제라는 것은 전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잘못된 편법이나 실수들을 걸러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내부적인 통제 수단’을 의미한다. 상기의 경우에서는 환자의 나이에 따라 구분되는 투약 방법에 맞춰 치료제의 양을 조절하여 올바르게 치료를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같은 주사기에 같은 약을 구분하는 통제 수단으로 유일하게 ‘뚜껑’이라는 것이 사용되었다.

 

실제로 벌어진 사례와 같이 뚜껑은 굴러떨어질 수도 있고, 일단 빼놓으면 어느 주사기에서 나온 것인지 착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절한 치료’라는 올바른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실한 통제 수단을 마련했어야 한다. 색깔이나 사이즈가 다른 주사기를 사용한다거나 주사기에 어떠한 표시를 해 놓는다거나, 그것도 부족하면 아예 환자에 따라 아예 주사기를 따로 분리하여 보관하는 등 다양한 방법의 내부 통제를 마련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좀 더 나아가, 난 이 사례를 통해 한국 대부분의 기관들이나 기업들의 안전이나 규범 등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다양한 외국 업체와 한국 업체들에서 일해본 결과, 난 한국 기업들에 만연한

 

(1) ‘빨리빨리’ 하기 위해 보여주기식의 ‘대충대충’ 밀어붙이는 문화와

(2) ‘만약’이라는 생각에 대한 부재 또는 ‘설마’라는 안일한 생각이

 

외국 기업들과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배경을 살짝 설명하자면, 미국에서 변호사가 된 이후 원래 4~5년만 있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어찌어찌하다 보니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업체와 기관을 옮겨 다녔다. 법대를 졸업한 해부터 중소 미국 법률 회사에서 수년간 있었고, 그 후에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한 한국 은행의 자회사에서 잠깐 근무를 하다가 한국으로 오기 직전까지는 월스트리트에 있는 영국계 미국 금융기관에서 2년간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에 있는 미국계 IT 업체의 한국 자회사에서 일을 한지 약 3년이 다 되어간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종류와 사이즈의 한국과 미국, 유럽계 업체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한국과 서양 국가들 사이에 문화적 차이나 업무 방식의 상이함에 대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을 정립하게 된 것 같다.

 

 

 

1년 반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한 한 한국 은행의 자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고용되었을 당시 회사는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으로 미국 금융감독기관으로부터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구축하라는 일종의 집행 명령(order)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 회사에서 고문변호사(in-house counsel)로 고용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모회사에서는 이 중대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TFT(Task Force Team)를 꾸려 뉴욕에 보냈는데, 이들의 임무는 뉴욕에서 근무하는 2~3년의 짧은 기간 사이에 금융감독기관을 설득하여 감독기관에서 내린 명령을 철회시키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이었다. 미국 감독기관들은 한 번 명령이 나가면 그 명령을 받은 기업들은 수년간 유의 주시하고 주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완벽하게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명령을 철회를 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짧은 기간에는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였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문화와 행정 체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TFT가 불가능한 임무를 가지고 왔을 뿐만이 아니었다. TFT는 소위 말하는 실적을 어떤 형식으로라도 모회사에 보여줘야 하니 모든 걸 ‘빨리빨리’ 해결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성급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성급함은 ‘대충대충’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구축하기를 지향하는 여러 준법지원인들과는 물론, 사외이사들, 컨설팅 업체들 및 나를 포함한 관련 직원들과도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내가 있었던 1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최고 준법지원인(Chief Compliance Officer)은 몇 개월에 한 번꼴로 여러 번 교체되었고, 내가 퇴사한 후에는 관련되었던 직원들에 의해 여러 민사소송에 휩쓸렸으며, 결국 금융감독기관에서는 원래 명령을 기반으로 상당 금액의 과징금을 징수하게 된다 (원래 명령에는 과징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구축이 전부였다).

 

이러한 결말을 맞은 이유를 세부적으로 분석을 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문제의 근본에는 내가 앞서 말한 두 가지 문제점 중 한 가지 첫 번째 문제인 ‘빨리빨리’와 보여주기식의 ‘대충대충’의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한 병원에서의 사고의 원인은 두 번째 문제인 ‘만약’의 상황에 대한 생각의 부재인 듯하다. 다시 말해, 아마도 사고가 난 병원에서는 아예 주사기 뚜껑이 굴러떨어져 간호사가 실수할 가능성 자체를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의 많은 기업들도 아예 감독기관이 들이닥친다거나 어떠한 사고가 날 수 있는 ‘만약’의 상황에 대한 리더십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무관심은 컴플라이언스에 본질적인 장애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법규를 준수함으로 인해 법 위반을 예방하는 노력이 실적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굳이 어떤 사고가 나거나 감독기관에서 들이닥칠 때까지는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과는 달리 외국 기업들이 준법에 신경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경험을 통해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 번 감독기관의 제재를 받게 되면 감독기관의 제재 수준, 특히 과징금이 엄청나게 높을 뿐만 아니라 대응하는 데 소요되는 변호사 비용 및 컴플라이언스 구축 비용, 그리고 평판이 훼손되었을 때의 손해 또한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인 GDPR을 심각하게 위반할 시 순이익(profit)이 아닌 전체 매출액(revenue)의 4%나 2천만 유로 중 더 높은 금액의 과징금이 책정되어 있다. 또 미국의 경우 부정부패방지법 위반의 최대 과징금은 33억 달러, 당시 환율로 3조 6666억 원이었고, 이 비용은 순수 과징금일 뿐 변호사 비용 및 컴플라이언스 구축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감독기관의 명령에는 과징금은 물론 컴플라이언스 구축 관련된 요구사항이 별도로 포함되어 있으며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강력한 제재의 존재와 그에 대한 경험이 외국 기업들에게 ‘만약’이라는 생각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경제 성장 면에 있어서 한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었다. 2021년 7월 유엔에서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정식으로 변경하였고 경제적인 랭킹은 2023년 기준으로 10위로 기록되어 있다. 컴패션(compassion international)이나 월드비전(world vision) 등 글로벌한 NGO들의 시각에서도 한국은 후원을 받던 나라에서 후원을 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케이스다. 나 또한 교육을 하러 여러 국가에 다닐 때마다 화장품, 마스크팩, 잡지 등을 부탁받아 사 갈 정도로 한류의 열풍은 뜨겁다. 나 스스로도 매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나에 대한 소개로 “I am from South Korea, the country of K-pop and K-drama.(저는 K-pop과 K-drama의 나라인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소개를 할 정도다.

 

그러나 준법지원인, 더 나아가 법조인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아직도 각종 뉴스에서 보는 기업과 정부기관들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안전, 보안, 부정부패, 환경, 자금세탁, 개인정보보안 등 준법과 관련된 인식이 부족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심이 있는 경우에도 보여주기식 또는 수박 겉핥기로 유명무실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컴플라이언스의 근본적인 목적은 수치화하기 어려운 안전, 인권, 보안, 개인정보보호, 청렴, 환경 등의 고차원적인 사람 중심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다. 이러한 컴플라이언스는 문화로 스며들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오랜 기간이 걸린다. 이러한 부분을 기업에서 스스로 인식하고 고민하고 차근차근 정착시킬 때, 그리고 사회에서도 당연히 이러한 가치들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정착될 때, 대한민국은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p 4.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