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6. 16:12ㆍ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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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성장기
- Ep 4. 저연차 변호사의 신뢰와 전문성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 : 의사 표현 역량
10대 어느 시점부터 누군가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줄곧 변호사라고 답하였습니다. 고분고분하기보다는 부당하다 싶은 말에는 소위 “말대답”을 하기도 했고, 언쟁에서 지는 편은 아니었으며,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까지 서슴없이 손을 들고 줄곧 말을 잘하던 아이여서 그랬는지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너는 변호사 해도 되겠다, 얘~”라는 얘길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고, 법학 공부도 재미있었기에 어쩌면 제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하고 살던 제가 오랜 수험 생활의 영향인지, 튀지 않고 무사히 로스쿨을 졸업하자는 3년간의 신념이 몸에 배어서인지 첫 직장 생활에서는 먹고 싶은 점심 메뉴조차 말하길 어려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20대의 사회 초년생이면 모를까 지금 생각하면 다소 민망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사업부와 점심식사를 할 때, 한껏 제 취향에 맞춰주려 “뭐 좋아하시나요? 점심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라는 질문에도 “아무거나요.”, “전 다 좋아해요, 다 잘 먹어요.”라는 정말 멋없고 바보 같은 대답만 했었습니다. 분명 먹고 싶은 게 있는데도 마치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대답만 나와버렸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요새 말하는 내향형 'I' 도 아닌데도 그저 내 생각, 내 의견을 말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업무를 하는 것도 비슷했습니다. 아무래도 저연차 변호사이다 보니 회의에서도 먼저 나서서 의견을 내는 것보다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태도가 점점 고착화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내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 누구에게도 나를 알아줄 의무가 없는 걸 알면서도 입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변호사가 되어서는 조용히, 묵묵하게 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흑역사로 손꼽는 에피소드가 하나 터지는데, 변호사시험 합격 후 첫 직장에서 6개월 간의 수습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을 때 일입니다.
그 당시 인생 처음으로 연봉 협상이란 것을 하게 됩니다. 모든 기업들이 그러하듯 협상이라기보단 통보에 가까웠습니다. 스스로 어필은 하지 않았지만 애사심 하나로 힘들었어도 묵묵히 열심히 일했는데, 수습을 떼고 받아 든 첫 연봉 계약서는 썩 맘에 들지 않는 것을 넘어서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 제가 연봉 계약서를 받아 들고서 마음먹은 것은 ‘퇴사’였습니다.
심지어 마음만 먹은 것이 아니고 곧장 제 상사에게 가 퇴사를 하겠다고 의사까지 표명하였습니다. 당시 신입의 패기 어린,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행보라고 정신 승리했지만, 어리고 미숙한 행동이기 짝이 없었습니다. 상사 입장에서는 수습 변호사가 회사에 적응을 잘한다고 판단하여 좋게 고과 평가하여 임원에게 보고하고 정규직 변호사로 올려놓았건만, 갑작스레 나가겠다고 하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상사가 이유를 묻자 저는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다닐 수 없다고 말하였고 상사는 이런 제 말을 듣고는 기가 차다는 듯이 “연봉이 마음에 안 들면 네가 딜을 해야지, 그냥 나가면 누가 좋은 건데?” 라며 “협상이라도 해 보고 맘에 들지 않아 나가는 것은 너의 자유이지만, 그것조차 안 해보고 이렇게 하는 건 앞으로 변호사 일을 하든 사회 생활을 하든, 너에게 결코 유리한 행동은 아니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말을 듣고 바로 납득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야 이 회사에서 엄청난 신임을 얻고 있으니 협상이 가능하겠지만, 나 같은 저연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가는 것밖에 없다고요!”가 실제 저의 진심이었으니까요.
상사의 긴 면담과 퇴사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르겠다’는 말만 하였고 (당시 코로나 시기였기에) 쓰고 있던 마스크 뒤로 알 수 없는 속상함에 눈물만 흘리며 퇴사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기에 상사는 우선 오늘은 하루 연차를 쓰고 주말 동안 생각을 정리하도록 시간을 주셨고, 저는 면담을 끝내고 선배 변호사님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후 퇴근을 하였습니다.
미리 앞서 흑역사라고 밝혔다시피 이건 하루, 아닌 반나절만 지나고 나서도 제 상사의 말씀이 백번 옳은 말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사의 말을 곱씹으며 지난 기간의 제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을.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 우연의 결과가 아닌 그동안의 나의 태도의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저연차 변호사로서 꾸준하게 키워 나갔어야 하는 ‘의사 표현’이라는 역량 부족이 첫 직장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도망’이라는 초라한 결과로 장식하게 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p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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