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4. 13:37ㆍ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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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성장기
- Ep 6. 승소의 도파민에서 고객 만족의 보람으로 : 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시선 변화
사내변호사 경력을 쌓으면서 한 번의 이직을 하였기에 가끔은 자연스레 두 회사를 비교하게 되는데, 단순히 좋다/나쁘다를 떠나서 두 회사는 참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 보면 스스로 그 다름을 선택했기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기존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요.
이번 글은 참 다른 두 회사를 겪으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각한 사내변호사로서의 지향점, 그리고 보람을 느끼는 지점 등 저의 가치관 변화 정도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뢰인과의 소통, 서면을 잘 쓰는 능력, 사실 관계의 정확한 파악, 실체적 진실을 알아내는 것, 지치지 않는 체력 또는 물고 늘어지는 끈기와 인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승소라는 결과물 아닐까 싶습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무죄 선고를 꿈꾸고, 전부 승소를 소망합니다. 여러 변호사님들이 운영하시는 개인 인스타그램의 피드에 보란 듯이 ‘전부 승소! 무죄 판결!’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판결문과 함께 그분들의 노고가 담긴 멋들어진 글이 올라오고, 좋아요가 가득히 눌리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주된 업무가 송무가 아니기에 직접 수행한 사건에서 승소를 하는 그 짜릿한 경험의 '찐'은 모릅니다. 하지만 전 직장에서 법무실장님과 선배 변호사님들이 로펌과 협업하여 연이어 승소를 이끌어 내시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반소에서마저도 큰 성과를 이루어 영전하시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어찌나 존경스럽고 한없이 높아 보이던지. 마치 저까지도 그 공로의 일부를 거든 양 괜스레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 그지없지만 어쨌든, 변호사에게 승소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몸담았던 회사는 이처럼 소송이 많은 편이었고, 그것도 꽤 난도가 있는 편에다가, 회사 사정을 모르면 깊게 파고들기가 어려운 사건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법무실 변호사님들의 기여가 상당히 요구되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대리인으로 선임된 로펌 변호사님들의 엄청난 노고 역시 부정할 수 없으나, 정말이지 여느 기업과는 달리 첫 회사의 법무실은 소송에 깊게 관여하였기에 법무실의 입지는 성과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건들도 좋은 결과가 나왔기에 법무실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갔고, 그런 분위기 탓인지 저는 자연스럽게 “역시 변호사는 승소로써 실력을 증명해 내는구나.”라는 다소 위험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이기는 게임이라는 도파민에 취해 있던 첫 직장을 뒤로 하고, 다른 의미로 또 다이내믹한 현 직장에 와있는 지금의 저는 전략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좀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현 직장은 다양한 산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고, 계열사마다 수많은 협력 업체와 계약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에 오히려 분쟁(소송)으로 치닫는 극적인 상황으로 가지 않는 것이 우월 전략인 것이죠. 따라서 사전 계약서 검토에 보다 더 신중했고 리걸(legal) 이슈의 가능성이 감지되었을 땐 즉각적이고 정확한 자문을 통해 이를 예방하는 업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점을 파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스템과 메일로만 자문 요청과 회신이 오갈 때에는 사업부의 표정이나 어조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저 텍스트 그대로 이해하고 기본서에서 배웠던 법리대로, 법전에 있는 조문대로, 판례가 설시한 대로, 그리고 우리 회사가 승소하는 방향대로 의견서를 작성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분쟁에서 이기는 방향, 승소하는 방향이었고 필연적으로 상당히 공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런 방식이 틀린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지만, 나의 진짜 고객인 사업부가 만족하는 방향인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대면 미팅이 잡혀 사업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상대 회사에 대한 적극적인 청구가 아니라 빠르게 이 문제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을 파악하고 나니 미팅을 하거나 회의를 이끌어 나가는 접근 방향 역시 달라졌습니다. 기존의 상담은 고객(사업부)의 입장보다는 제 입장과 시각에서 우리 회사가 주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다소 공격적인 상담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유리한 입장을 무기로 어떤 식으로 상대 회사를 압박할 것인지, 여러 가지 협상 방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죠.
그렇게 사업부와 마주하고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알게 된 후 접근 방식을 달리하니, 만족하는 얼굴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내변호사로 일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막막했는데 변호사님 말씀 듣고 나니까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이 서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법률 전문가로서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싸우지 않고 해결책을 찾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분쟁이 아닌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 그 과정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 그것이 현재 제가 사내변호사로서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승소의 도파민에 취했던 신입 변호사에서 문제 해결의 동반자로 한 걸음 성장한 지금, 미래에는 법률 전문가를 넘어 비즈니스 전략가로서의 새로운 여정을 꿈꿔 보기도 합니다.
Ep 7.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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