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2. 10:21ㆍ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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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연차 사내변호사의 성장기
- Ep 3. 신입 사내변호사, 할 일이 없을 때는 뭘 해야 할까?
지난 글에서는 과감히 도전하고,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함으로써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쟁취하는 것이 저연차 사내변호사가 지닐 태도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장황하게 글을 썼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딘가 찝찝함이 남았습니다. 저연차 변호사가 또는 회사의 신입사원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기회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 역시도 운이 좋았다거나, 또는 절망적인 위기의 순간을 일종의 ‘정신 승리’ 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오늘의 글은 이상적인 내용보다는, 수습변호사로 시작하여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어떻게 경력을 채워 나갔는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수습변호사 6개월의 기간 동안 아주 잠깐의 로펌 경력을 제외하고는 사내변호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였습니다. 일반적인 로펌에서 민법, 형법, 행정법 등이 베이스가 되는 사건의 비중이 많다면 기업 법무에서는 상법 중 특히 회사법, 그리고 기업이 운영하는 사업과 관련된 분야의 특별법들을 주로 다루게 됩니다. 제가 처음 근무하였던 직장에서는 특히 상법(회사법)을 볼 일이 많았습니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할 때도 상법은 주력 과목이 아니었던 제가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매일 회사법을 들춰 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 있었던 민사법 분야, 나름대로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형사법 분야가 아닌 기업 법무라는 것을 하게 되고 그 베이스가 상법이라는 생각에 입사 전에는 변호사시험을 치르면서 봤던 상법 암기장이라도 다시 보고 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로펌에서는 사법시험 수험 생활까지 합쳐 그래도 수년간 봐왔던 민사, 형사와 관련된 기록을 다루었기에 크게 생소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는데, 회사에서는 제 주력이 아닌 분야의 법을 많이 본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겁은 먹었지만, 법무실은 아주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었고 정신없이 적응을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이슈가 발생하여 법무실 주간 회의에서 상법의 제도, 규정을 가지고 논의를 했습니다. 논의를 하다 보니 현재 발생한 쟁점이 상법 어디에 속하는 내용인지, 어떤 판례가 있었는지 흐릿하게나마 떠올랐습니다. 저는 당시 그 회의를 통해서 앞으로 저연차 사내변호사로서 어떻게 내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감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주목했던 지점은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상법이 이슈를 검토하며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는 점과 주요 내용을 상법 어디에서 확인하면 될지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로펌에서도 기록을 받고 민법 또는 형법의 내용을 떠올리며 업무를 수행했으니 비슷한 프로세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민법과 형법은 이미 많이 봐왔었기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너무 당연하여 인지조차 못했습니다.
접해 본 적 없었던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는 먼저 이슈가 발생하고, 이후 리서치를
하면서 관련 법령과 판례를 찾아 해결하는 순서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때문에 기업 법무에 있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모르는 법(이를테면 중대재해처벌법)과 내가 익숙한 법(이를테면 민법, 형법) 사이의 위치하는 내가 ‘잘’은 모르는 법(이를테면 상법)에 대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업 법무는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인만큼 일이 생긴 이후에 관련 정보를 조사하여 진행하는, ‘완전히 모르는 법’의 프로세스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업무를 하면서 필요한 지식들은 시험 공부를 할 때처럼 수년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틈틈이 자주 생기는 이슈에 대한 주요 제도나 연결되는 법률 지식에 대해서 미리 지식을 쌓아 놓으면 실무에서 접했을 때 처음부터 다시 조사할 필요 없이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변호사가 사건을 통해 업무 능력을 함양하는 것은 맞지만, 저연차 사내변호사는 로펌에 비해서 수행하는 사건이나 자문의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더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회사에서 일이 생기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1년 동안은 회사에 다니면서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던 법무 이슈에 해당하거나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면 모든 세미나와 강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기업 법무 전반에 대하여 개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형 로펌에서 사내변호사들을 위하여 12주간 진행하는 기업 법무 강의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참석하였고 내용을 정리하여 법무실장님과 변호사님들에게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12개의 주제를 다루었다면 그중 80% 이상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어났던 이슈였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얻은 지식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간접 지식이었지만 현업에서 질의가 오면 이를 통해 당황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업무에 만족감을 주었고 성취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배우고 학습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니 주변에서는 자연스레 제 노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력하여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 건은 지변이 한번 해봐.”로 시작해서 주 담당을 맡게 되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3년 차가 된 지금은 세미나나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잘 압니다. 불과 1~2년의 차이이지만 이제는 세미나나 강의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필요하기보단 실제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요구될 만큼 한 단계 또 성장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연차 사내변호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도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미나나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을 ‘놀러 다닌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도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유의미하게 도움이 되겠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그 분야만큼은 본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도 관련 업무가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만들고, 이는 오롯이 나의 자산이 되어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업무를 하게 될 기회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저 역시 여전히 주변의 수많은 말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저만의 길을 닦아 나아가려 합니다.
Ep 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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