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Ep 5. K-웨딩의 모든 것 by 권현진

2024. 12. 4. 10:09캐나다 출신 외국변호사의 한국적응기

변호사들의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 '변호사 커뮤니티'  '로글로그' 입니다.

 

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 Ep 5. K-웨딩의 모든 것

 

벌써 오빠와 결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오랜 시간 준비한 결혼식이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동시에 묘한 허무함도 느껴진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온 해외 변호사와 한국 남자의 사랑은 국경을 넘는 여정이었지만, 한국 결혼식 준비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었다. 이른바 'K-웨딩'은 예상보다 준비할 것이 훨씬 많았다.

 

결혼식 준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우리의 결혼 첫걸음은 올해 1, 우연히 들른 용산 아이파크몰의 웨딩 박람회에서 시작되었다. 결혼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던 우리는 그냥 구경이나 해볼까?’하고 들렀는데, 상상했던 화려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는커녕, '웨딩 박람회'라고 적힌 입간판과 몇 개의 테이블,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예비부부들로 북적여서 우리는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한참을 대기해야 했다. 솔직히 이렇게 빈약한 현장에서 굳이 대기해야 하나 싶었지만, 도대체 이들이 뭘 보고 여기서 상담받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되었고, 상담 실장님이 먼저 "혹시 연예인 커플 아니세요?"라는 기분 좋은 멘트로 영업을 시작하셨다. 덕분에 기분이 한층 업 된 우리는 어느새 영업에 자연스레 홀려 있었다. 그때, 상담 실장님이 예쁜 신랑 신부 모델이 담긴 앨범을 보여주며 "인물 위주 스튜디오는 어떠세요?"라고 제안하셨는데, 그 순간 눈에 익은 이름이 들어왔다. 바로 로스쿨 시절, 미모의 선배 변호사가 한옥 배경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나중에 결혼하면 꼭 거기서 찍으라고 추천했던 곳이었다.

 

이런 운명적인 우연을 놓칠 수 없었기에, 우리는 해당 스튜디오를 선택했고, 가계약 후 일주일 내로 취소가 가능하다는 말에 일단 계약서를 작성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담해 준 분이 우리의 웨딩 플래너였다. 계약에는 본식 신랑 신부 메이크업, 웨딩 촬영 메이크업, 제휴된 드레스 업체 이용까지의 토탈 패키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귀가 얇은 우리는 처음 하는 결혼이라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계약을 진행했고, 이어 피부관리숍 신부 관리 체험권 결제까지 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 뒤는 예물 반지 업체, 혼주 한복 업체 순서였는데, 결혼반지는 이미 봐 둔 디자인이 있었기에 겨우 웨딩 박람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불과 30분 만에 우리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의 앞 글자를 따서 줄인 말로,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가 많이 이용하는 결혼 관련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결혼 열차"에 탑승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에게 웨딩 플래너는 꼭 추천하고 싶다. 복잡한 결혼식 준비 절차를 플래너가 차근차근 안내해 주고 예약도 적시에 도와주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훨씬 수월해진다. 신랑 신부의 드레스와 턱시도 선택부터 웨딩 촬영 예약까지 모든 일정이 촘촘히 포함되어 있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웨딩 플래너 서비스가 한국만큼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직접 결혼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K-웨딩 플래너는 그런 부담을 덜어주며, 예비부부가 결혼식 준비를 더욱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식장 알아보기

 

나는 한국의 가을을 무척 좋아해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뜻한 9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형부와 함께 호주에 살고 있는 친언니가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직전인 2019년 가을, 한옥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가족과 친지, 친한 친구들이 모여 오후 5시쯤 시작한 야외 웨딩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나도 꼭 이런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빠와 결혼식 방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문화 차이를 느꼈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이 비교적 짧고, 식사 시간을 포함해도 두세 시간 내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캐나다에서는 결혼식이 종일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식 결혼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한국식 결혼은 축하하기에는 너무 짧고 형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식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예식을 원했지만, 오빠는 한국식 결혼을 원했다.

결혼식 장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소규모의 야외 결혼식이 일반적이지만, 오빠는 초대할 손님이 많았기에 대규모 예식장과 수용 인원이 많은 것이 중요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중간 지점을 찾기로 했다. 예식은 한국식으로 간결하게 진행하되, 결혼식 전날 가족, 친구들과 함께 더 긴 시간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결혼식이 신랑 신부의 스타일과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주가 결혼식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부모님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이런 차이들은 처음에는 나에게 생소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결혼 준비 과정은 단순히 예식을 계획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배경과 가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두 문화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예복 맞추기

 

최근 200만 원이 넘는 남자 예복을 이탈리아나 영국산 원단이라고 속이고, 실제로는 저렴한 원단으로 만든 양복을 고가에 판매해 수익을 챙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혹은 한 번이길 바라며) 결혼을 준비하며 많은 돈을 투자하는 예비 신혼부부에게는 정말 잔인하고 비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SNL에서 본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예비 신랑신부가 웨딩드레스 투어를 하며 피팅비를 지불했는데도 불구하고, 신부를 5초 동안 보는 데 별도의 비용을 요구받는 장면이 나왔다. 웨딩드레스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으니 화가를 불러 스케치를 시키고, 그 비용까지 요구했다. 심지어 화가가 사용하는 연필 한 자루에도 5만 원을 지불하라고 하니, K-웨딩 시장의 웃픈 현실을 잘 풍자한 것 같다. 과연 이게 결혼 준비인지, 아니면 상업적 착취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예비 부부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킨다. 우리도 박람회에서 100만 원으로 예복을 맞출 수 있다고 들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국내산 원단이었고, 수입산 원단과 비교하니 디자인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결혼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위해 좋은 예복을 맞추고 싶어 하는 예비부부의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이 실제로 많은 업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예복 숍이든 식장이든 한복 숍이든 상담을 받을 때, 오빠와 나는 항상 "신랑신부"로 불렸고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를 강조하며 프리미엄 옵션을 추천받는 일이 많았다.

 

나 또한 오빠 예복을 고를 때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해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이탈리아 원단을 선택했다. 대신 이벤트를 통해 수제 커플화와 넥타이, 셔츠까지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는 마음을 충족시키면서도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는 균형 잡힌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이를 위해서는 담당 플래너나 예복 숍과 충분히 상의하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 준비는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과정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캐나다에서는 사실 예복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어서 맞춤 정장집에 가서 고르거나, 쇼핑몰이나 인터넷에서 정장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살림을 꾸리기도 전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각자의 취향에 맞게 준비하되, 불필요한 지출은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 같다.

 

웨딩드레스 고르기

 

웨딩 플래너가 제공한 업체 리스트를 참고해 웨딩드레스 업체의 홈페이지나 SNS를 미리 살펴본 뒤, 나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을 가진 한 곳을 선택해 피팅을 요청했다. 그러나 플래너님께서 비교를 위해 최소 두 곳 이상에서 피팅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셔서, 2지망 업체는 오전, 1지망 업체는 오후로 예약을 잡았다. (한 곳당 기본 2~3시간이 소요되니,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결국, 내가 미리 눈여겨봤던 드레스가 많았던 1지망 업체와 계약을 했고, 다른 업체와 비교했을 때 혜택도 더 만족스러웠다. 참고로, 피팅비가 한 곳당 최소 5만 원이기 때문에, 나처럼 확실한 선호 스타일이 있다면 굳이 여러 곳을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두 곳 이상을 가본다면 더 마음에 드는 곳을 나중에 예약해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대학생 시절, 나는 웨딩드레스 대여와 웨딩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는 bridal shop & studio에서 웨딩 코디네이터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다. 이때 드레스 입히는 법, 촬영 시 드레스 잡는 법, 신부 화장 등을 배웠다. 수많은 드레스를 접해본 덕분에 신부의 체형별로 어울리는 드레스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주는 풍성한 스커트의 긴팔 레이스 드레스를 선택했다. 운 좋게도 나에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드레스를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소한 팁으로는 드레스 투어를 주말보다 평일에 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말에는 웨딩 촬영이나 결혼식으로 인해 인기 드레스가 빠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언을 구할 두 명 이상의 동행자를 데려가면 선택에 도움이 된다. 나는 어머니와 지금의 남편과 함께 갔는데, 둘 다 이견 없이 예쁘다고 한 드레스를 쉽게 고를 수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내 친구들은 주로 이베이(eBay)나 인터넷에서 웨딩드레스를 주문해 집이나 공원에서 간단하게 예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웨딩드레스 자체에 대한 큰 로망보다는, 드레스를 입었을 때 잘 어울리고 편안하며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것을 중시했다.

 

양가 혼주 한복 맞추기

 

이번 결혼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을 꼽자면, 어머님들의 한복을 같은 곳에서 맞춘 것이다. 헤어 액세서리부터 노리개까지 비슷하게 맞추고, 흰 저고리에 친정어머니는 분홍색 치마, 시어머니는 청록색 치마로 통일했다. 두 분이 같은 스타일의 한복을 입고 입장하시는 모습을 보니, 새삼 한복이 가장 우아하고 격식 있는 자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캐나다에서 본 결혼식에서는 양가 어머니들이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오셔서, 피로연 때 양가 부모님, 친척, 신랑 신부까지 함께 나와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전형적인 한국 결혼식에서는 양가 부모님의 춤을 볼 수 없지만,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화촉 점화의 순간을 함께하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웨딩 촬영

 

캐나다의 결혼 준비와 달리, 한국에서는 결혼식 전에 웨딩 사진을 찍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과정 또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웨딩 준비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바로 이 웨딩 촬영이었다. 캐나다에도 결혼식 전 촬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스튜디오보다는 야외 촬영이 많고, 종일 촬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오전 11시부터 촬영을 시작해 아침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웨딩 드레스를 고르고 화장을 받았다. 드레스를 입어보고 고르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다. 한복 촬영도 원했는데, 마침 스튜디오에 한복이 한 벌만 있어 고민할 필요 없이 선택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촬영 중간중간에는 헤어 변형도 있었다. 처음엔 풀어 내린 머리로 시작해 반묶음, 마지막엔 업스타일로 마무리했는데, 이모님이 세심하게 도와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웨딩 이모님은 헤어와 드레스 환복뿐만 아니라 메이크업 수정과 드레스 위치까지 챙겨주셔서 촬영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참고로, 이 모든 서비스에는 추가 요금이 발생했다.

 

촬영 중간에 헤어피스를 추가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본식이 아닌 촬영이라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나중에 한 동생이 추가금 18만 원을 내고 헤어피스를 붙였는데, 결과물이 부자연스러워 후회했다고 들었다. 결혼 준비 중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과 선택 사항들을 현명하게 조율해 나가길 추천한다.

 

우리는 토탈숍에서 촬영했기에 한 건물 내 다양한 테마로 촬영할 수 있었다. 1층 한옥에서 한복 촬영을 하고, 각 층마다 다른 테마로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오빠와 각각 캐나다와 한국 국기를 들고 컨페티를 날리며 촬영도 했는데, 참 재밌었다. 또한, 하루 종일 촬영을 함께한 이모님과 작가님, 그리고 스태프분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다.

 

한국에서는 청첩장이나 포토 테이블에 사용할 사진이 중요하기에, 촬영 날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도 결혼 준비의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촬영 중 사랑스러운 포즈를 많이 연습한 덕분인지, 본식 촬영과 신혼여행지인 산토리니에서 스냅 사진을 찍을 때도 남편과 나는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포즈를 취해 작가님들을 놀라게 했다.

 

그 외 준비해야 할 것들

 

그 외에도 식전 영상, 부케, 청첩장 등 소소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지만, 그 준비 과정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길 바란다. 여자 입장에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결혼 과정에서 많이 티격태격할 수 있는데, 소소한 선택을 아내에게 맡기면 결혼 준비가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다. 다행히도 지금의 내 남편은 모든 사소한 결정권과 선택권을 나에게 주었고 (물론 큰 결정, 예를 들어 부동산 등은 그도 의견이 있으니 내가 전적으로 존중해준다.),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사실 결혼이란 단순히 두 사람의 약속을 넘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집안의 큰 대소사이지 않은가. 우리의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은 가까이에서든 멀리에서든 따뜻한 응원과 도움을 보내준 많은 분들 덕분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특별한 과정을 통해 행복하고 멋진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알콩달콩 결혼 준비를 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K-웨딩에 대해 전혀 모르고 무지했던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소소한 팁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결혼 후 EP. 6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