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1. 19:38ㆍ캐나다 출신 외국변호사의 한국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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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 Ep 7. 저출산과 육아, 그리고 선택의 문제
최근 한국의 출생률이 0.74명까지 떨어졌다는 뉴스를 접하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저출산 문제는 단순한 사회적 이슈를 넘어 국가적인 과제가 되었다. 높은 육아 비용, 직장 환경의 한계, 보육 시스템 부족 등이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주변을 보면 맞벌이를 하며 자녀를 두지 않는 DINK(Double Income No Kids)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한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도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현실이 느껴진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 기르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진다.
캐나다의 육아 지원 시스템은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 내가 살았던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육아휴직 제도는 기본(9개월)과 연장(16개월) 두 가지 옵션을 제공하며, 연방정부의 고용보험(employment insurance)에서 급여를 지원한다. 기본 육아휴직을 두 부모가 나눠 사용할 경우 추가 1개월이 주어지고, 연장 육아휴직의 경우 최대 16개월까지 가능하다. 출산휴가까지 포함하면 총 1년에서 1년 6개월 동안 안정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급여가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휴직 후에도 직장 복귀가 보장되며, 정부 차원의 양육 지원이 폭넓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Canada Child Benefit과 같은 양육 지원금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할 수 있는 ‘우윳값’이라 불린다. 2024년 기준, 부모 소득이 34,863 CAD 이하일 경우 최대 금액을 받을 수 있으며, 감액 없이 지원받는다면 자녀가 18세까지 총 119,922 CAD(한화 약 1억 2천만 원)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주별 각종 추가 육아 보조금까지 더해져 경제적 부담이 한층 줄어든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캐나다에서는 육아가 ‘희생’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육아휴직의 실효성이 낮고, 경제적 부담이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변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특히 남성들의 경우 ‘육아휴가를 쓰면 눈치가 보인다’거나 ‘육아휴직 후 복귀하면 자리도 바뀌고 경력 단절이 걱정된다’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단순히 출산 장려금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실질적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을 해주며, 직장 문화와 보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경쟁적인 교육 환경: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
내가 자란 도곡동은 학원가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중학생이었던 언니는 밤늦게까지 학원 단속을 피해 커튼을 치고 촛불을 켜며 수업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유학을 간 후, 내 학창 시절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았고, 과외나 학원 없이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물론 성적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학생 개개인의 강점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표였다. 성적보다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과 협업이 강조되었고, 이러한 교육 환경은 직장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캐나다의 직장 문화는 개인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팀워크와 상호 협력을 중시한다. 상명하복보다는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강점을 살려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입시 경쟁이 직장 문화까지 영향을 미친다. 협력보다는 개인의 성과가 강조되고, 동료와 협업하기보다는 우위를 점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협업이 기본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교육 방식의 차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결정짓는다.
물론, 경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은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고 빠른 발전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나 역시 학창 시절, 공부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든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공부하면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든 대신,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가?’, ‘내가 진짜 잘하는 것, 재미있어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의 차이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학업 성취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아이의 학업과 직업 선택이 부모의 희생이 아니라, 아이의 주도적인 결정에 맡겨진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학벌보다 개인의 역량과 기술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서비스업은 높은 팁 문화로 인해 선호도가 높고, 배관공과 같은 기술직 역시 높은 연봉을 보장받는다. 이처럼 대학 진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겨지며, 개인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한국식 교육 방식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지만,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충분히 고민한 뒤 스스로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다. 아이의 주체적인 사고와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호주에서 출산한 언니를 보면서, 조카가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호주의 문화도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육아는 어느 나라에서든 쉽지 않다. 하지만 출산과 양육이 전적으로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라면 부모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 것이며, 이는 결국 아이의 성장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직장 동료들은 치열한 한국의 교육 환경 속에서도 하나같이 ‘그래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밤을 지새우며 아이를 돌보고, 고민의 무게가 더해지는 순간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육아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지원책을 넘어, 부모와 아이 모두가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보다는 협력, 강요보다는 자율이 존중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저출산 문제 해결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다음 세대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EP. 8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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