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Ep 6. 외국인의 눈으로 본 K-사회생활 : 한국 직장에서 살아남는 8가지 팁 by 권현진

2025. 2. 26. 13:55캐나다 출신 외국변호사의 한국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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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외국 변호사의 한국 적응기 

- Ep 6. 외국인의 눈으로 본 K-사회생활 : 한국 직장에서 살아남는 8가지 팁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첫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예상 밖의 다름’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소개받는 과정은 낯설고 신기했다. 특히 빠지지 않는 질문들—“결혼하셨나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은 캐나다에서는 상상도 못 할 개인적인 질문들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료의 나이를 몰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캐나다에서 살아온 나에게 한국의 직장 동료들이 던진 질문들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또한,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캐나다의 업무 환경과 다른 한국 특유의 직장 문화는 새로운 도전이자 배움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직장 생활에서 꼭 알아 둬야 할 8가지 생존 팁을 소개하려 한다.

(좌) 왼쪽은 아직도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내 책상. K-사회생활을 하며 나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 (우) 사무실에서 키우는 나의 반려식물, VOG.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이나와 닮아 있다.


 

1. 의사소통의 ‘맥락 읽기’ – ‘네’를 ‘네’로 부르지 못하는 이유  

 

캐나다에서는 의사소통이 직설적이고 명확하다. “Yes.”는 말 그대로 “Yes.”이고, “No.”는 분명히 “No.”다. 돌려 말하기보다 핵심을 먼저 이야기하는 문화 덕분에 대화가 간단하고 효율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사소통에 맥락과 배려가 더 중시된다. 예를 들어, “네.”는 상황에 따라 “알겠습니다.”를 뜻하기도 하고, 단순히 “들었습니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회의 중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묵묵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서는 직접적으로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관계를 해치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나온 표현일 때가 많다. 하지만 처음엔 이런 모호함이 헷갈릴 수 있다.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같은 확인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아직까지 적응하지 못한 부분이긴 하지만, 나는 요청을 받을 때 확실히 “네.” 또는 “아니요.”로 대답하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기 때문에 ‘모호함’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피곤하더라도 재차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Tip: 회의가 끝난 후 동료나 상사와 따로 대화하거나 이메일로 내용을 요약해 정리하자. 이런 작은 습관이 오해를 줄이고 신뢰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 '예의'는 곧 관계의 기본

 

캐나다에서는 상사와 동료를 평등하게 대하며, 캐주얼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메일 한두 줄로 간결히 소통하고,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대화하는 문화 덕분에 업무는 효율적이고 친근하게 진행된다.

 

반면, 한국의 조직 문화는 체계적이고 예의를 중시한다. 계급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직급과 역할에 따른 엄격한 규칙이 존재한다. 명함을 주고받는 방식, 존댓말 사용, 업무 메시지의 표현 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예의가 관계의 기초를 이룬다.

 

특히 이메일에서는 정중함이 필수다. 한국에서는 “안녕하세요, 팀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이 기본이다. 이는 처음엔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가 신뢰를 쌓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어에는 존댓말이라는 독특한 언어 체계가 있어 표현의 뉘앙스가 중요하다. 상대방의 기분과 맥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예의’에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Tip: 명함은 두 손으로 주고받고, 상대방의 직급에는 항상 ‘님’을 붙이자. “팀장님, 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처럼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짧고 간결한 메시지를 선호하더라도, 한국식 예의를 반영하는 것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3. '눈치'는 생존의 기술

 

한국에서는 비언어적 소통과 분위기 파악이 생존 스킬에 가깝다. 회의 중 상사나 동료가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미묘한 표정 변화나 한숨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읽어 내야 할 때가 많다. 사실, 한국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 쓰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 그래서 ‘눈치’를 안 보고는 살기 힘든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눈치’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는 “이거 가능해요?” 한마디면 충분하지만, 한국에서는 “혹시 가능하시다면 검토 부탁드립니다.”처럼 포장된 표현이 자연스럽다. 직설적인 표현은 때로는 어색하거나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Tip: 처음엔 어렵더라도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상사와 동료의 의도를 파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회의 중 분위기를 읽고 적절한 타이밍에 의견을 내는 것은 팀워크와 집단주의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특히 중요한 기술이다. 또한, 돌려 말하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더라도 시도해 보자. 부드럽게 말하면 상대도 부드럽게 반응한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4.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라

 

느긋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캐나다에서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수였다. 재촉한다면 오히려 결과물이 더 늦게 나오는 경우도 흔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이민국은 전화 문의가 너무 많아 일부러 전화선을 끊어 놓고 자동 응답 시스템을 통해 순차적으로 이메일 답변만 제공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빠른 일 처리와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빨리빨리’ 문화가 흔하다. 그러나 법무처럼 신중함이 필요한 업무는 이 문화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다행히 나는 여러 분야를 다루는 로펌에서 근무하며 업무 속도와 철저함을 동시에 요구받아 왔기에, 이런 환경에 비교적 익숙한 편이다.

 

법률 업무는 계약서와 서류 작업이 일상적이므로, 작은 디테일까지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 번의 실수가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업무 메시지에 대한 신속한 응답이 중요하다. 캐나다에서는 이메일에 며칠 내 답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답장이 늦으면 상대방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빠르게 응답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Tip: 긴급한 요청에도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고, 필요하면 추가 시간을 요청해 정확한 결과를 전달하자. 바빠서 즉시 답장을 못 하거나 사실 확인이 필요한 경우 "이 부분을 더 확인 후 답변드리겠습니다." 같은 표현으로 신뢰를 유지하자.

 

 

 

5. 개인적인 질문은 예의가 아니다? Maybe

 

캐나다에서는 동료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처럼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특히, 말실수나 막말은 치명적일 수 있다.

 

다행히 나는 한국 직장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보다 10년 먼저 캐나다에서 와서 K-회사 생활을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선배 덕분이었다. 그 선배가 알려준 가장 중요한 사회생활의 룰은 로펌에서의 client privilege(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 유지 의무로, 법적 조언을 위해 공유된 정보가 의뢰인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원칙) 원칙과 비슷했다. 즉, 동료와의 이야기를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는 것. 입이 가볍다는 평판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모임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Tip: 동료가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열린 마음으로 응답하되, 과도하게 깊게 묻거나 구체적인 질문은 피하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대화하는 것이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열쇠다.

 

6. 지시가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도 업무 지시는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는 매뉴얼을 따르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바쁜 현대인의 업무 대부분에서 구체적인 배경 설명이나 맥락을 제공받는 일이 드물다. 예외적으로 우리 팀장님은 이메일에 완벽한 상황 정보(context)를 제공하며 업무를 지도해주시지만, 이는 흔치 않은 경우다. 따라서 업무 지시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나는 캐나다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처음 상담부터 마무리까지 혼자 진행하며 문제 해결 중심으로 일했기 때문에,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하여 한국에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Tip: "이렇게 진행해도 될까요?"와 같이 의견을 제안하며 상사의 확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 상황을 조율하자. 지시가 모호한 상황에서 혼자 추측하며 일을 처리했다가 상사의 기대와 다른 결과를 낼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 질문을 통해 같은 페이지에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수다.

 

7. 결정은 모두의 합의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명하복’이 더 강하다

 

한국의 의사결정은 겉으로는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사의 의견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더라도 최종 결론은 종종 상사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캐나다에서는 회의 중 활발한 토론을 통해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회의가 정보를 공유하고 상사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직장은 개인플레이보다 팀워크를 강조하는 문화다. 따라서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중요한 스킬이다. 또한, 상사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네, 알겠습니다."로 응답한 뒤 상황에 맞게 실행하는 것이 슬기로운 행동이라 볼 수 있겠다.

 

Tip: 의견이 다를 경우, 직접적으로 반대하기보다는 제안을 통해 부드럽게 접근하자. 예를 들어, "이 방향도 고려해 보시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거나, 우선 동의한 후 “이 부분에 대해 제 생각은 이런데, 어떻게 보시나요?”처럼 겸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8. 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처음에는 업무 외 시간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모임을 즐기고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회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중요한 네트워킹의 기회이자 결속을 다지는 자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언제 한번 밥 한 끼 해요.”는 단순한 초대가 아니다. 이는 관계를 깊게 만들고 신뢰를 쌓는 중요한 기회다. 이 제안이 나왔다면, 가능한 한 성의 있게 응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VIBE(Vitality, Interaction, Balance, Entertainment)라는 회사 동호회를 꾸려 문화 활동과 회식을 함께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난주 첫 활동으로 강남역 보드게임 카페에서 게임을 즐긴 뒤, 연말 분위기에 맞춰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한국에서는 동료끼리 처음에는 다소 ‘비즈니스 관계’로 데면데면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신뢰를 쌓아가는 방향으로 관계가 발전한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처음부터 직설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을 선호해 빠르게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식은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 업무 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식이라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려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적당히 즐기는 모습이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Tip: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경우, 정중히 양해를 구하거나 첫 잔 정도는 예의로 받아들이며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주자. 사실, 중요한 것은 마시는 양이 아니라 분위기를 맞추는 태도다. 가볍게 잔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다. 꼭 술을 마셔야만 친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모금 정도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은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하며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단순히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차이를 존중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의 직장 문화가 낯설고 까다롭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관계의 미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글이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시작하려는 분들이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나 또한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해 나가고 싶다.

 

비록 조금 피곤할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바로 슬기로운 K-사회생활의 묘미 아닐까?

 

 

EP. 7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