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7. 축하자리엔 역시 떡볶이, 근데 이제 진심을 곁들인 by 이현욱

2025. 1. 24. 19:49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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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7. 축하자리엔 역시 떡볶이, 근데 이제 진심을 곁들인

 

 

우리 삶에는 다양한 축하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생일,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중요한 시험 합격 등.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그 순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서로 축하를 하곤 합니다. 회사 생활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군가가 새로 조직에 합류하면 그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또 모두가 고생한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에는 이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저 정기적으로 단합을 다지는 회식 자리나 직원 생일 축하를 위한 케이크, 때로는 연말에 이어지는 시상식처럼 근사한 자리도 있습니다.

회사 생활 속의 '축하'란 어떤 의미일까요? 축하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돌이켜보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축하의 장면은 몇 년 전 공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동료의 근속 30주년축하 자리입니다. 묵묵히 회사를 위해 일해 온 그녀를 위한 작은 축하 행사가 열렸습니다. 직원들이 만든 상패가 조용히 건네지고, 3개의 커다란 촛불이 켜진 케이크가 들어오자, 동료들이 잔잔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감사의 의미로 떡볶이와 순대를 준비해 동료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떡볶이 미팅 동안 회사 생활에 대한 소회를 담담히 털어놓았습니다. 함께 입사했던 동기 중 여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본인뿐이라고 했지요. 그녀가 털어놓은 긴 세월의 소회가 떡볶이의 따뜻함과 함께 매콤하게 전해졌습니다.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배경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몇십 년간 같은 회사를 위해 일하며 수많은 세월을 견뎌 온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그동안 어떤 변화 속에서 일해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요. 저는 무례하게도 그녀를 그저 퇴직을 얼마 앞둔 한 명의 직원 정도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녀가 이야기의 물꼬를 트자 자연스럽게 다른 동료들도, 그동안의 회사 생활을 하나둘 털어놓았습니다. 20년 차 직원, 10년 차 직원, 이제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직원까지, 저마다 보내온 시간도, 시대도 모두 달랐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누군가 남아있던 야채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짧은 떡볶이 미팅은 끝이 났습니다. 그녀는 덕담(?)으로 그 자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마침 저희 팀에는 만 19세에 회사 생활을 시작한 젊은 사원이 있었는데, 그녀가 그를 향해 말했습니다. “OO 씨는 나중에 40년 근속 상패 받겠네!” 그 말을 들은 그는 입을 떡 벌리며 말했습니다. “으악, 40년이라니요!”

제가 이 에피소드를 전하는 이유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축하라는 행위가 거꾸로 진심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내온 축하 자리는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간적 교류가 업무로 한정되다 보니, 그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낄 일이 드물었지요.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기보다는, 각자 역할 속에서 조용히 존재하는 동료로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타인을 축하하는 행위는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가던 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근속 30주년을 맞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의례적으로 시작한 축하 자리가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경험을 겪은 것입니다. 비록 이 자리에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차마 다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그토록 거친 시절을 거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저는 그녀의 살아남음을 정말로 축하해 주고 싶었습니다. 입안에는 떡볶이와 오뎅을 가득 문 채로 말이죠.

 

그러한 깨달음 후로는 크고 작은 축하의 순간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원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딛고 무사히 일을 마쳤을 때 작은 간식을 준비해 고생했다며 격려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 번은 한 동료가 오랜 시도 끝에 중요한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을 때 모두가 함께 축하하며 박수를 보냈지요. 반대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던 날에도 우리는 나름대로는 노력했다는 마음을 전하며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이 순간들 모두에 진심 어린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러한 축하 행위가 소중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축하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후, 집에서의 작은 축하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내의 매년 그 해의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만드는데요. 저는 그 사진집 만들기를 그녀의 행사로 여기며, 아내에게 달리 도움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달랐죠. 엄마와 함께 컴퓨터 앞에 모여 어떤 사진을 사진집에 실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합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완성한 사진집을 때때로 꺼내어 보곤 하죠

 

어느 날, 아이들이 사진집을 펼쳐 보이며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순간이었는데, 둘째 아이를 위해 색종이로 팽이를 접어주는 순간을 첫째가 찍은 것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둘째가 먼저 접는 모습을 보여주면 제가 따라 접는 모습이었습니다. 내복 바람으로 시시덕거리며 마주 앉은 아빠와 딸의 모습이 퍽 다감해 보였습니다. 저도 몰랐던 장면을 아이들이 찾아준 것이지요.

요즘 들어 아이들은 사진집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한 듯, 소중한 순간을 남기겠다며 아빠와 엄마의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 다닙니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어보는데, 개중에는 연말 사진집 후보에 오를만한 것들도 꽤 있습니다. 자신과 주변의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아이들을 보며 기념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또 이렇게 아내가 매년 우리 가족이 보낸 한 해를 조용히 축하하고 있었다는 사실도요.

 

어쩌면 축하란 무언가를 함께 기억하고 나누려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의례적으로라도 무언가 이유를 붙여 축하하는 것은, 차츰 진심이 담기며 소중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순간으로 변화해 가기도 합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았더라도 무언가 이유를 붙여 일단 축하해 보시죠. 시작은 마음이 담기지 않았더라도 뭐 어떻습니까. 일단 서로 빈 그릇을 내밀고 축하를 시작하다 보면, 자연스레 진심이라는 떡볶이로 채워지기 마련이니까요.

 

 

Ep 8.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