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 20:26ㆍ법정보다 오피스: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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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보다 오피스 : 인하우스 변호사의 커피챗
- Ep 9.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담지는 못해도 닦아 낼 수 있어요
※ 본문에 등장하는 사건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각색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은 그의 최신작 <불변의 법칙>에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인센티브’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하우절은 평범한 사람들도 인센티브로 인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이러한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인센티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사실적 근거가 주어진다 해도, 뭔가가 참이기를 바라는 절실한 욕구나 필요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없다.”
즉, 그가 말하는 인센티브는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결과나 상황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내면의 강렬한 심리적 동기를 포함합니다. 이런 심리적 인센티브는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현실을 믿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가 말하는 인센티브에 대한 설명은 사전적 정의에 꼭 맞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비상식적이거나 불합리한 행동까지도 일으키는 강력한 욕구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이 주장은 꽤 타당해 보입니다. 회사 내부에서든, 회사 외부의 로펌에서든 변호사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대개 그들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겐 그 실수로 발생한 결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매우 강력한 인센티브가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때로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이도록 이야기를 꾸미고, 심지어 명백히 밝혀진 증거와 충돌하는 진술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강력한 인센티브 앞에서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사실 관계까지도 왜곡하려는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잊히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억울한 일을 당해 기소될 위기에 처한 피의자를 변호한 사건이었습니다. 처음 그 의뢰인을 만났을 때, 정말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결백을 간곡히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건의 경위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다며 방대한 양의 자료를 건넸습니다. 의뢰인의 진술은 논리적이었고, 그가 설명한 자료의 내용들도 사건의 흐름과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더 깊이 파헤치던 어느 날 밤, 저는 자료를 검토하던 중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제출된 자료와 그의 진술 사이에 미묘한 어긋남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수나 착각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자료와 진술 간의 모순은 점점 더 명확해졌습니다.
결국 제출된 자료는 사건의 진실을 입증하기는커녕, 의뢰인의 설명과 거의 무관한 내용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자료의 내용과 구성은 복잡했지만, 본질적으로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을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료에 의존해 사건을 설명하려 할수록, 그의 진술이 설득력을 잃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자료 중에는 그의 유죄를 분명하게 증명하는 내용까지도 있었습니다. 의뢰인의 ‘유죄 판결을 피한다’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사실을 왜곡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시 의뢰인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주신 자료들이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혹시 이 자료들을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무죄인데…, 무죄가 맞거든요. 제가 가져올 수 있는 자료는 모두 가져온 것인데요. 그런데, 변호사님이 저를 못 믿으시면… 의뢰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의뢰인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료를 준비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료들이 오히려 사건의 진실을 흐리게 하고, 심지어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설명해야 하는 제 입장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자료를 확인했고,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재판 전략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죄를 인정하면서 양형을 최대한 유리하게 적용받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선생님, 제 말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사건을 제대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자료들이 객관적인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보면, 선생님께서 무죄 주장을 하시는 것은 선생님께 불리할 것 같습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고개를 숙였습니다.
“변호사님이 믿지를 않으시니 함께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렇게, 그 의뢰인과의 인연은 끝이 났습니다. 나중에 우연히 그의 재판 결과를 알게 되었는데,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확인한 유죄의 증거를 두고 끝까지 의뢰인과 다퉈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그가 사실을 직면하게 도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의뢰인의 믿음이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그 착각을 바로잡는 것 또한 제 역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죄가 아닌 양형을 다투었다면, 의뢰인에게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저는 종종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왜 의뢰인들은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할까?’ 심지어 명백한 자료가 그들의 주장과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이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은 셈인데, 실수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인센티브가 의뢰인들로 하여금 사실을 왜곡하거나 심지어 외면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 사건은 비록 좋은 결말로 끝나지 않았지만, 저에게 변호사의 역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변호사는 단순히 의뢰인의 말을 대변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의뢰인이 스스로 마주하기 어려운 사실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역할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사실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잘못된 신념이나 착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국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상황을 바로잡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 냅니다. 그것이야말로 실수를 극복하고 상황을 바로잡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사건은 저에게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실수를 바로잡는 것은 사실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 말입니다. 형사 범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실수하는 순간은 있죠. 그때, 그 실수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진실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사실과 마주하기는 어렵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건 하우절의 경고를 전해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질문을 당신 자신에게 던져보라."
"만일 내 인센티브가 달라진다면 현재 가진 견해 중 어떤 것이 바뀔까?"
'내 견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단순히 인센티브에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 탓에 눈이 멀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Ep 1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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